[이호규의 영화토크] ‘기억의 밤’ 플롯의 하모니로 이룬 성장된 한국형 스릴러

[이호규의 영화토크] ‘기억의 밤’ 플롯의 하모니로 이룬 성장된 한국형 스릴러

기사승인 2017-12-13 09:27:40

영화 ‘기억의 밤’(감독 장항준)을 보면서 2002년작 ‘라이터를 켜라’를 연출한 장항준 감독이 정말 만들었을까라는 의구심을 가졌다.

예비군 훈련 받은 철없는 백수의 ‘라이터 되찾기’라는 심플하면서 간결한 조폭코미디 스토리를 연출했던 장항준 감독이 반전의 반전을 거듭한 그것도 기억이라는 특정 소재를 매개체로 성장된 한국형 스릴러를 완성해내어 보는 내내 흡족했다.

영화 ‘기억의 밤’은 납치된 후 기억을 잃고 변해버린 형 유석(김무열)과 그런 형의 흔적을 쫓다 자신의 기억조차 의심하게 되는 동생 진석(강하늘)에 대한 영화이다.

돈으로 인한 살인, 납치, 유괴, 우발적 살인이 아닌 사람의 기억이라는 장치를 통해 관객들에게 히치콕 감독이 주로 사용했던 맥거핀을 적용하고 과거 1997년과 현재를 오가며 감독의 의도로 플롯을 곳곳에 매끄럽게 활용했다는 점이 돋보인다.

영화 초반에 진석은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는 여러 사건들을 겪는다. 초반부터 벌어지는 진석의 혼란스러운 기억은 관객에게조차 무엇이 진실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진석의 아버지(문성근)는 새집으로 이사 온 첫날, 2층 작은방에는 절대로 들어가선 안된다고 강조한다. 마치 스산한 무언가의 비밀을 감춘 방, 영화 ‘세븐’에서 볼 수 있는 지속적으로 세차게 내리는 비, 어두움, 정체 모를 소리 등 관객의 숨을 죽이는 미장센을 입히며 텐션을 유지한다.

하지만 허술한 부분도 엿보인다. 첫째는 형 유석이 실종됐다고 진석은 부모에게 말하지만, 앙상블 연기에서 정작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다지 놀라워하지 않는다. 이때는 유석과 아버지, 어머니가 진석의 친 가족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기 전이라 아쉽다.

둘째는 지속적인 반전과 반전을 보여주어 완벽한 스릴러를 만들고 싶었던 장항준 감독의 욕심이었을까. 그 정도가 지나쳤다. 스릴러의 극대화를 표방하기 위해 너무나 많은 장치와 이야기를 입혔다. 멈추지 않고 끊임없는 과도한 반전이 오히려 관객들에게 신선하지 못한 혹은 무딘 리액션을 가져오게 만들었다.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의 현대 최고의 스릴러 ‘디아더스’는 선혈이 잦은 반전이나 과도한 비명 없이도 서늘함과 텐션을 전달시키는 세련되고 매혹적인 공포를 담아냈다.

액티브한 많은 반전보다 음울한 분위기를 잘 표현한 조명과 미장센, 서늘한 음악으로 몽환적인 느낌을 최대한 살리고 공포감을 자아냈다.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 역시 관객들에게 억지로 공포를 선사하거나 반전을 삽입하는 것을 자제하고, 순수와 본능의 경계선에서 흔들리는 인간본연의 욕구와 한계를 날카롭게 표현하며 긴장감을 유발시켰다. 특히 롱테이크로 구성된 무빙과 디졸브 효과, 시계소리, 바람소리 등을 통해 발전된 스릴러 영화의 한 단면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의 밤’은 분명 여러모로 고심한 흔적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주인공 진석을 통해 자신의 기억조차 믿을 수 없게 만들어가는 짜임새 있는 시퀀스는 한국 스릴러 영화의 큰 성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영화는 진석을 통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기억과 인물관계, 가장 소중한 가족도 의심하게 만드는 정황, 사실과 왜곡을 조이며 관객들에게 계속 누가 범인이고 결말이 어떻게될까라는 질문을 유도하게 만든다.

시대적 배경을 90년대 후반으로 한 것도 친숙하다. 현재 4050세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어려웠던 그 시절을 회상하고 가족을 한번 즘은 다시 생각할 것이다. 한없이 중산층과 서민 가족이 붕괴됐던 90년대 말미 기억은 때론 공포로 작용하기도 한다.

영화 내내 어두운 밤에 비가 내리는 장면도 스릴러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많이 기대한 장면일 것이다. 특히 극 중 진석이 비를 맞으며 이층집 벽을 타고 올라가는 장면은 가족에 대한 비밀이 벗겨지는 순간이며 가장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장면이기도 하다.

기억의 밤이 칭찬받아야 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있다면, 바로 살아가면서 우리가 가장 믿고 사랑하는 가족을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고, 믿지 못하는 존재들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함께 방을 쓰는 친형이 어느 날 갑자기 낯설게 느껴진다면?’,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가 갑자기 어머니가 아닌 걸로 느껴진다면?’이라는 설정은 그 어떤 스릴보다 효과는 배가 되고 소름끼친다.

기억의 밤은 가장 익숙하고 사랑했던 존재가 갑자기 낯설어질 때의 긴장감을 극대화한 설정을 통해 부정확한 기억과 내면을 가진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며 잔인한 의심과 진실을 드러낸다.

이호규 남예종예술실용전문학교 연기예술학과 교수. 영화평론가

이영수 기자
juny@kukinews.com
이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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