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 간 간격 1m… 현실과 이상의 충돌

병상 간 간격 1m… 현실과 이상의 충돌

환자간호ㆍ감염방지 요구 vs 물리적ㆍ금전적 현실, 고민만하는 정부

기사승인 2017-12-14 00:04:00
2015년 5월 20일 중동호흡기증후군 일명 메르스(MERS)가 퍼지기 시작하며 국민들은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다. 메르스 환자와 보호자, 의료진은 물론 전국민은 감염의 공포에 휩싸였고, 내수경제마저 휘청했다.

이에 보건당국은 메르스 사태가 진정된 후 감염병 예방 및 관리를 위한 다양한 방안들을 내놨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의료기관의 병상 수를 줄이고, 병상 간 간격 기준을 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련의 기준이 오히려 독(毒)이 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016년 7월, 병상 개수 및 이격거리를 설정한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내놨다. 환자의 입에서 나오는 침이 닿을 수 있는 거리를 바탕으로 병상 사이 간격을 확보해 병원 내 감염을 최소화하겠다는 취지다.

개정안을 살펴보면, 상급종합병원을 비롯해 300병상 이상 병원급 의료기관은 병실 당 최대 4개 병상만을 둬야한다. 2019년부터는 신축 혹은 증축한 경우 침대와 침대의 거리를 1.5m, 침대와 벽과는 0.9m 떨어뜨려 놔야한다. 기존 시설은 병상 간 1m만 유지하면 된다.

◇ 기준만 지키면 OK?… 감염병 예방 후퇴

문제는 신ㆍ증축을 하지 않은 기존병실이다. 복지부는 명시적 기준을 설정하며 물리적ㆍ공간적 한계를 근거로 강하게 반발하는 의료계를 무시할 수 없었고, 병상을 붙여놓는 경우를 없애 일정 거리만 띄워도 병원 내 감염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당시 병원계는 병상 간 이격거리 및 음압병실 설치 등 감염관리를 위한 개정안을 따를 경우 20~40%의 병상수가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고, 건물을 새로 짓지 않는 한 공간을 늘리고 줄이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이유로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요구”라며 반발했다. 

여기에 시설의 개보수 등에 소요되는 비용을 보상하는 등의 정부지원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의료기관들은 최대한 병상수를 줄이지 않고 비용을 들이지 않으면서도 규정을 준수하려는 움직임이 일었고, 그 결과 기준만을 준수한 ‘좁은’ 병실들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실제 3기 상급종합병원 지정을 신청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계백병원을 비롯해 확인한 몇몇 의료기관들의 경우 6인실에서 병상을 2개 줄이는 대신 2인실에 병상을 추가해 3인실로 변경하는 방식으로 병상수 감소를 최소화했다.


그 와중에 ‘기존시설의 경우 병상 간 1m’라는 기준이 활용됐다. 규정만 지키면 문제될 것이 없는 만큼 이격거리를 사이에 두고 침대를 들였고, 폭 80cm 가량의 보호자용 간이침대 하나를 놓으면 침대에서 환자가 내려오며 발 디딜 공간조차 사라지는 3인실이 갖춰졌다.

과거 6인실조차 병상과 보호자용 간이침대를 놓을 수 있는 공간을 갖췄다면, 보다 쾌적해야할 3인실이 비좁고 불쾌한 공간으로 재탄생한 셈이다. 합법적으로. 당연하지만 감염예방 및 관리 또한 어려워졌다.

◇ 지원 없는 개선엔 한계… 해결책이 필요하다

2016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예산안 심사과정에서 당시 새누리당 박인숙 의원(현 바른정당)은 “병상 간격을 넓히는 내용의 의료환경개선 시행규칙 개정안을 마련했지만 병상 간격을 넓혀도 메르스는 퍼진다”며 “과학적 근거도 없이 범법자를 양산하는 법”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정진엽 전 보건복지부장관은 “다소 무리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타당성에 대해 다시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1년여가 지난 지금도 달라지거나 재개정이 이뤄지진 않고 있다.

이와 관련 복지부 관계자는 “의료기관의 현실적인 어려움과 환자의 불편, 감염예방 등을 위한 환경개선방향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고민하며 논의를 이어가고 있지만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면서 “문제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만큼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개선이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당장 병원계 관계자는 “2인실을 3인실로 변경했음에도 병상수가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며, “냉정히 말해 불법이 아니기에 의료기관이 손해를 감수하며 이격거리를 더 넓히려는 결정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상계백병원 관계자도 “일부 3인실의 병상 간 간격이 좁다는 민원이 접수돼 개선을 고민하고 있다”며 “개정안 시행까지 1년여가 남은 만큼 최적의 설계를 통해 공간을 확보하고 병실을 쾌적하게 바꿀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쉽지 않은 작업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한편, 복지부는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어려움을 토로하는 병원들에 대한 별도의 지원은 검토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복지부는 개별 병원들의 손실을 산출해 보전해주기는 쉽지 않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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