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 일명 문재인 케어가 발표된 지 4개월여가 지났다. 그간 직접 당사자인 의료계를 비롯해 각종 학회나 단체, 국회는 문재인 케어의 성공가능성을 점치고 올바른 보장성 강화방향에 대한 논의를 이어왔다. 각종 토론회와 심포지엄, 학술대회 발표만 20여건에 달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한 합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상희 의원(더불어민주당, 부천소사)과 한국보건행정학회가 18일 문재인케어 성공전략을 모색하기 위해 적정의료와 적정수가를 논의하는 토론회를 마련했다. 이 자리에서 의료계와 시민단체, 학계와 정부는 보장성 강화가 필요하며 적절한 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한 진료 및 심사체계 개편, 적정수가 보장 등 방향성에 대해서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다만, 적절한 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한 의료전달체계 및 심사체계 개편, 적정수가 보장을 위한 방식, 문재인 케어시행을 위한 재원마련 방법, 국민부담 증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출과 공감대 형성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방안에 대한 합의는 이뤄지지 못했다. 심지어 의료계 내부에서조차 의견이 충돌하는 양상을 보였다.
서울대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는 ‘비급여의 급여화’를 핵심으로 하는 문재인 케어의 성공을 위해 의료전달체계를 ‘기능’ 중심으로 개편하고, 의료기관의 운영과 진료행태, 서비스 질에 따른 수가의 가ㆍ감산과 심사 및 관리체계 개선을 통한 의료계의 수용의지 확보를 제안했다.
의원-병원-종합병원-상급종합병원으로 나뉘어는 있지만 역할과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 발생하는 혼란과 쏠림 등을 해소하기 위해 의원을 1차 의원과 외래중심 전문의원, 입원중심 전문의원, 전문병원과 지역거점병원, 권역거점병원으로 세분화하고, 가산 혹은 감산을 통해 기능을 확립하며 적정진료에 따른 적절한 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의료계는 진료과 혹은 행위별 세부지침을 개발해 진단과 치료의 표준화를 유도하고, 정부는 법과 같은 명확성을 갖춘 ‘고시’로 규정된 급여기준을 포괄적이고 유연한 진료지침 수준으로 개정해 기계적으로 이뤄지는 심사와 진료비 삭감으로 인한 의료계의 불만과 불신을 해소해야한다는 내용도 담았다.
김 교수의 제안에 의료계는 전달체계 구분에 대한 기준과 현실적인 역할과 요구, 가ㆍ감산 제도의 한계, 제도 및 정책 개선의 선후문제를 지적했다. 당장 적정수가 혹은 의료서비스 원가 측정자체가 어렵다는 점을 언급하며 정책에 대한 불신과 우려를 표했다.
◇ 의료계 내부에서조차 합의 안 되는 의료기관 기능적 분화
가장 큰 걸림돌은 문재인 케어의 바탕이 될 의료전달체계 개편이었다. 김윤 교수는 의료기관을 포괄적ㆍ내과적 진료와 전문ㆍ외과적 진료, 외래와 입원을 기준으로 기능을 분류했다. 가정의학과와 소아과, 산부인과 등을 1차진료의원으로, 피부과와 정신과 등을 외래중심 전문의원으로, 외과계를 입원 중심 전문의원으로 나누는 식이다.
이에 대해 의료계 관계자들은 김 교수가 제안한 기능과 역할에 맞는 진료행태와 수가 가감산 체계를 갖추는 방식이라는 큰 틀에서는 공감하면서도 각자의 이해관계와 역할에 따라 서로 다른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어흥선 비뇨기과의사회 명예회장은 높은 의료질과 짧은 입원일수를 보고하는 비뇨기과 의원의 전립선비대증 치료사례를 들며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보다 우수한 1차 외과계 의원의 고난이도 의료서비스를 강제로 제한하는 방식에 대해 우려했다.
반면 유인상 중소병원협회 보험위원장은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의 경우 수술과 처치 등에 대한 정부의 엄격한 관리가 이뤄지지만 의원급에서 환자의 안전이 보장받을 수 있는 방안이 현재 부족하다는 점이나, 의뢰-회송 체계확립 논의 등에 중소병원은 빠져있다는 점 등을 들며 기능 분화 과정에서의 폭넓은 소통과 의견수렴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외에도 이덕철 가정의학회 이사장과 서진수 대한병원협회 보험위원장 등은 1차 의료기관의 주치의적 기능을 강화하고 의료기관 종별체계의 장벽을 세우는 한편, 1차 의료기관과 의료인이 환자를 책임지고 돌보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정책적 유인책과 지원에 대한 추가적인 논의가 요구된다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 적정수가 등 문재인 케어 소요재정 논의에서 제외된 ‘국민’
의료기관의 기능 중심 전달체계 개편과 또 다른 쟁점은 문재인 케어의 실현을 위한 재정적 뒷받침과 국민의 부담에 대한 동의에 대한 문제다. 의료계는 문재인 케어가 실행될 경우 발생하는 막대한 재정적 부담이 국민에게 전가되는 만큼 충분한 이해와 설득과정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이에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은 의료와 정부에 대한 신뢰가 우선돼야한다고 반박했다.
이동욱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사무총장은 “자체조사결과 건강보험 수가 정상화를 위해서는 25조원 가량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관련 비용이 문 케어 소요재정추계에는 반영되지 않았다”면서 더 많은 비용이 필요하고 국민이 이들 일정부분 이상 부담해야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동의를 얻기 위해 설득하는 작업이 선행돼야한다고 말했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 또한 “의학적 비급여의 해소와 본인부담 상한제 등 문재인 케어를 통해 취약계층 진료비는 오르겠지만 전체 국민의료비는 오를 수도 있을 것”이라며 이날 언급되지 않았던 민간보험과의 연계 및 의료비 부담경감을 위한 노력을 시사했다. 특히 수가 조정과 의료이용행태 개선을 위해서는 소비자와의 신뢰회복을 함께 고려해야한다고 봤다.
이루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 정책실장은 수가체계 개편, 의료기관 종별 기능적 재설계를 위한 가ㆍ감산 제도 설계에는 동의의 뜻을 표하면서도 가ㆍ감산 및 수가 비율 등에 대해서는 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국회와 정부의 국고지원 삭감편성을 거론하며 국가가 책임을 다하지 않는 상황에서 국민의 부담증가를 요구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전하기도 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전문가와 시민사회단체, 의료계, 학계의 적정수가에 대한 시각이 좁혀지고는 있지만 아직 다 다른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이 많은 수가 인상에 대해 동의할지 의문”이라며 환자 안전과 의료 질 향상이라는 기준을 세우고 여기에 맞춘 수가 인상과 국민설득이 필요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와 관련 정통령 보건복지부 보험급여과장은 “현 의료체계를 유지하기가 더 이상 어려워 체계를 전환하려는 것”이라며 “새로운 길을 가기에는 불안할 수 있지만 가야할 길이고 성공해야할 일이다. 의료계 체계 개편과 적정수가 보상, 비급여의 급여화를 동시에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재원조달 문제는 아쉽게 생각하지만 건강보험 재정의 누적 흑자분이 있고 예산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부족해 국고지원금의 과소 편성이나 일부 삭감이 이뤄졌다. 내년부터는 적극적으로 보장성 강화계획을 실행하고 효과를 보여 국민 동의를 얻어갈 것”이라고 첨언했다.
그 과정에서 협의체를 구성하고 논의구조를 개선해 의료계는 물론 학계나 시민사회와의 긴밀한 소통을 이어가면서도 신포괄수가제 활성화, 급여기준 및 결정구조 개선을 통한 심사체계에 대한 신뢰 확보를 이뤄갈 것이라는 점도 제시하며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