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지 않는 의사교수의 제왕적 지위

무너지지 않는 의사교수의 제왕적 지위

폭행 피해자 울분에도 개선 '한계’… 사립대병원은 ‘사각지대’

기사승인 2017-12-19 00:04:00
의사로써 전문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2년의 의예과, 4년의 의과, 1년의 수련의(인턴), 4년의 전공의(레지던트) 과정을 거쳐 전문의자격시험을 통과해야한다. 11년을 환자의 생명을 살리고 상처를 치유하겠다는 꿈을 꾸며 보낸다. 

이처럼 꿈을 위해 정진하는 시간 중 상급자의 폭력으로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게 된다면, 꿈이 깨지고 인생의 계획이 무너진다면 어떤 기분일까. 답답함을 넘어 참담함이 가슴 속을 채워 평생의 화인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피해자가 미래의 소실이라는 고통을 느끼는 동안 가해자인 상급자나 지도교수는 가벼운 문책이나 벌금을 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우월적 지위를 유지하며 여전히 하급자의 미래를 인질로 목줄을 쥐고 흔든다. 폭행과 폭언, 성폭력을 자행한다.

18일 최근 논란이 된 전공의 폭행사건의 당사자가 국회의원회관을 찾았다. 그는 더불어민주당 유은혜·김병욱·정춘숙 의원과 정의당 윤소하 의원, 대한전공의협의회와 국회 아동여성인권정책포럼이 주최한 ‘전공의 폭행 근절 및 재발방지 대책마련 토론회’에 참석해 울분을 토했다.

“폭행당한 전공의들은 의사 사회에서 매장되고 꿈을, 희망을 포기하는데, 가해자들은 과태료 50만원, 100만원을 낼 뿐이다. 아무런 피해가 가지 않는다. 기관이나 병원에 맡긴다면 재발방지와 같은 문제해결은 절대 이뤄질 수 없다.”

전공의 폭행사건이 발생하면 해당 의료기관이나 학교는 대외적인 시선을 고려해 사건을 은폐 혹은 축소시키기에 바쁘고, 가해자들은 법으로 정한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 내에서 처벌을 받을 뿐 별다른 추가적인 제재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증언이다.


실제 안치현 전공의협의회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전공의제도가 시행된 이래 폭행과 폭언은 계속돼왔고, 환자의 안전과 의료서비스 개선은 담보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그리고 폭력의 대물림은 이를 제재할 법적·제도적 장치가 없거나 미흡하고, 의료기관과 학교의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안 회장은 “전공의의 71.2%가 언어폭력에 시달리고, 20.3%가 신체폭력을 당하고 있다. 여성의 48.5%는 성희롱을, 16.3%는 성추행을 경험했다. 그럼에도 피해자는 여전히 가해자와 같은 공간에서 근무하고, 따돌림과 불안에 괴로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동료의사의 꿈을 앗아가는 행위를 근절해야한다”며 ▶폭력행위에 대한 징계 등 수련병원 내 처리규정 개발 및 의무 부과 ▶피해자의 수련교육 유지를 위한 이동수련 제도개선 ▶지도전문의 자격제한 및 관리강화 등 법적·제도적 재발방지 대책마련 등을 제안했다.

◇ 정부 손 못 대는 사립대병원, 해법은 ‘자정’ 뿐?

폭행, 폭언은 전공의에게만 가해지는 것은 아니다.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은 의사를 제외한 의료기관 내 근로자들 대부분이 폭언과 폭행, 성폭력에 노출돼있으며 간호사의 경우 그 정도가 더욱 심각하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사회적인 관심과 질타가 쏟아지지 않는 한 제재할 수단은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나 실장에 따르면 제재할 수단은 없고, 돌아올 2차 피해에 대한 두려움은 커 ‘쉬쉬’하거나 ‘참고 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안 회장과 함께 병원 내 폭력은 사라져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전공의 폭행의 원인으로 의료기관의 도제식 수련방식과 법적·제도적 수단의 부족을 꼽고, ▶의학 교과과정의 체계화 ▶전공의특별법 개정 ▶수련병원의 의무 및 제재규정 명시화 등을 담은 전공의 종합계획을 수립해 개선해나가겠다는 방침이다.


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 권근용 사무관은 “수련환경이 불량하면 진료를 소홀히 할 뿐만 아니라 전문의로써의 역량이 부족해져 미래 환자의 안전에도 문제가 될 수 있어 이번 기회에 문제를 뿌리 뽑기 위해 종합계획을 마련하는 등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비인도적 행위가 근절되고 가해자와 수련병원을 제재하며 피해자는 보호받을 수 있도록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며 의료질 평가지원금 삭감, 의료기관 인증 및 상급종합병원 선정 불이익 부여, 이동수련제도 개선,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 등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교육부 대학정책과 김현주 과장 또한 “병원에 종사하는 많은 이들의 근무환경과 인권의식을 높이고 문제해결을 위해 다양하고 강도 높은 조치를 취하려 한다”며 국립대병원 경영평가 및 예산편성에 반영, 실태조사 및 중징계 추진, 사법기관 고소·고발 등을 추진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2018년 지정된 248개 수련병원 중 교육부가 관리하는 국립대병원은 일부에 불과하다. 대부분이 민간의료기관이거나 사립대학교 산하 병원으로 정부의 관리 혹은 제재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큰 영향을 받지 않는 상황이다. 김 과장은 “사립대병원의 경우 별다른 제재나 관여수단이 없다”며 “폭력사태가 발생할 경우 절차상의 문제만을 지적할 수 있을 뿐”이라며 한계가 있음을 자인했다. 

복지부 권 사무관 또한 "수련병원이나 가해 전문의를 직접 제재하기는 어렵다"라며, "의료법 등의 개정이 이뤄져야하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답했다.

그렇다고 의료계 내부적인 자정노력 또한 권한의 한계 등으로 ‘권고’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의협 관계자는 “의료인에 대한 공적역할이 강조되며 폭력피해신고센터를 개소하고 가해자에 대한 교육을 준비하는 등 자정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사의 면허정지 등 강력한 조치는 의료법의 위반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지도전문의 자격취소 등도 권고할 수 있을 뿐”이라며, “지도전문의가 가지는 제왕적 위치를 박탈하기 위해 보완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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