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작으로 손꼽혔던 tvN 토일극 ‘화유기’가 사면초가에 빠졌습니다. 방송사고에 이어 제작진 추락사고 소식이 전해진 것입니다. 제작진 A씨는 ‘화유기’ 촬영 현장에서 샹들리에를 매다는 작업을 하다가 낙상해 척수손상 및 뼈 골절 등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A씨의 친형은 28일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A씨가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다”라고 전했습니다. 그는 “A씨가 안전장치 없이 천장에 샹들리에를 달라는 지시를 받고 올라갔다”며 “천장이 하중을 못이겼거나 천장 소재가 너무 저렴해서 사고가 난 것으로 전해 들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두 번이나 연속된 사고는 누구의 탓일까요. ‘화유기’에서 발생한 사고는 한국 드라마의 열악한 제작 환경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쪽대본’과 ‘생방송 촬영’이라는 말을 들어 보신 적 있으실 겁니다. 시간을 다퉈 급박하게 진행되는 한국 드라마 촬영현장을 설명하는 용어입니다. 방영 시간을 앞두고 숨 가쁘게 내달리는 촬영현장에서 제작진은 희생을 감수해야만 합니다. 그야말로 제작진의 노동력을 갈아 드라마를 만드는 시스템입니다. 이번 사고는 쌓이고 쌓였던 문제점이 드라마에 영향을 미치며 바깥으로 노출된 것이죠.
지난 24일 방송된 ‘화유기’ 2화를 보던 시청자는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컴퓨터그래픽(CG) 처리가 이뤄지지 않은 화면이 고스란히 전파를 탔기 때문입니다. 중간광고 이후 방송은 중단됐고 10분가량 타 프로그램 예고를 송출하며 시간을 끌었지만, 이미 발생한 사고를 돌이킬 수는 없었습니다. 방송은 재개됐지만 곧 종료되고 말았죠.
이후 tvN 측은 공식 입장문을 통해 사과의 뜻과 함께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제작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더불어 “방송 안정화를 위해 오는 31일 방영 예정이던 4화를 차주로 연기하겠다”라는 대책을 내놓으며 “이러한 사고가 두 번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전체 제작 현황을 다시 한 번 점검하고 작업 시간과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겠다”라고 약속했습니다.
tvN 측의 사과는 진심이었을까요. 방송사고에 앞서 안전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며 ‘화유기’는 다시 한번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A씨의 추락사고가 지난 23일 오전 1시40분쯤 발생했음에도 tvN 측이 이를 쉬쉬하고 방송을 강행했다는 것이죠. tvN 측은 뒤늦게 공식 사과와 재발 방지 및 사고 처리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입장을 전했습니다.
이에 전국언론노동조합(이하 언론노조)은 ‘화유기’ 제작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언론노조는 지난 27일 “방송통신위원회와 관계 당국은 ‘화유기’의 미술 노동자 추락사고의 원인과 책임을 명확히 규명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언론노조는 “고용노동부는 즉시 CJ E&M과 JS픽쳐스에 드라마 제작 중지를 명령하고 근로환경과 안전대책 수립현황을 조사하라”라고 요구했습니다.
CJ E&M이 드라마 제작 환경으로 질타를 받은 것은 처음이 아닙니다. CJ E&M은 지난 6월 14일 tvN ‘혼술남녀’ 조연출 이한빛 PD의 사망사건을 계기로 방송 제작 인력 처우 개선을 하겠다고 약속했죠. 당시 CJ E&M 측은 적정 근로 시간 및 휴식시간 등 포괄적 원칙 수립 등을 대책으로 내놨습니다. 하지만 6개월도 지나지 않아 두 번의 사고가 발생한 현재, 그 대책이 현장에서 실행되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즐거움엔 끝이 없다’라는 tvN의 구호가 시청자에게만 유효해서는 안 됩니다. 시청자도 이런 소식을 거듭 전해 들으며 즐거울 수는 없겠죠. 양질의 콘텐츠만으로는 좋은 문화를 만들 수 없습니다. 콘텐츠는 제작 환경의 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제작 환경이 개선될 때 진정한 즐거움이 시작되지 않을까요.
인세현 기자 inout@kukinews.com / 사진=tvN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