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 결단 필요한 오프라벨, 아직은 제자리

식약처 결단 필요한 오프라벨, 아직은 제자리

교과서 약제조차 ‘철벽방어’… 고통 참는 환자, 우회로 찾는 복지부·의료계

기사승인 2018-02-06 06:38:46
아미트립틸린(amitriptyline)과 노르트립틸린(nortriptyline)이라는 삼환계 항우울제가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신경전달물질의 재흡수를 차단하는 효과가 있어 우울증이나 우울상태를 치료하는데 사용하도록 허가했다.

하지만 의학교과서를 비롯해 다양한 학술적 자료에서는 편두통 혹은 당뇨성 신경장애과 같은 각종 통증에도 효과적이라는 결과들을 내놨고, 임상현장에서는 허가범위를 넘어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다. 일명 ‘오프라벨(off-label)’로 불리는 ‘의약품 허가외 사용’이다.

문제는 교과서 수준에서의 의학적 근거를 갖춘 오프라벨이 300~400여개나 존재함에도 식약처가 이를 허용하지 않고 있어 ‘임의비급여’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당연하지만 허가 범위를 초과하는 의약품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 또한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 많은 수의 소아청소년 혹은 노인성 질환 치료제가 이와 같은 오프라벨 처방에 따라 쓰인다.

의약품의 허가과정은 ‘임상시험’이라는 인체반응실험을 반드시 거쳐야하지만, 면역력이 취약하고, 임상적 표준을 벗어난 유소년이나 노약자들은 시험 과정에서 배제된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허가나 치료제가 만들어지기는 쉽지 않다.

여기에 신경계 또는 정신계 약물, 심혈관질환 및 희귀질환 치료제 등도 허가를 위한 근거를 마련하기에 대상 질병군 환자 수가 부족하거나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 허가를 받지 못해 오프라벨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일부에서는 과거부터 오프라벨로 흔하게 써왔거나, 제약회사가 의약품의 대상 질병군을 추가할 경제적 이윤이 보장되지 않아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임상시험을 하지 않아 오프라벨로 처방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이에 의료계와 환자들을 중심으로 오프라벨에 대한 허가범위(적응증)를 확대하고 건강보험 급여를 지급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져왔다. 식약처의 의약품 허가과정은 ‘신청주의’에 따라 제약사가 요청해야만 적응증을 확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보건복지부도 이같은 요구에 가세했다. 면역항암제 오프라벨 처방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지며 표면화됐고, 보장성 강화정책의 핵심인 ‘비급여의 급여화’ 과정에서 오프라벨 처방에 따른 비급여의약품 일부를 급여권으로 포함시켜 환자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요구가 작용했다. 

결국 복지부는 지난해 말부터 식약처를 비롯해 시민사회환자단체, 의료계 및 의학계 전문가들을 모아 ‘허가초과의약품 제도개선 협의체’를 만들어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의학적 근거가 충분한 약제를 중심으로 허가 범위(적응증)을 추가하거나 보험급여를 인정하는 방향을 논의했다.

그러나 의약품의 허가를 전적으로 담당하는 식약처의 반대와 불성실한 태도로 인해 논의는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회의참석자들은 식약처를 “다국적 제약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모습” 혹은 “힘을 지키려는 권력자”로 묘사하기도 했다.


◇ ‘국민’은 없는 식약처의 ‘마이웨이(my way)’식 행태

협의체 회의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제도 개선을 위해 7번의 회의를 가졌지만 식약처는 주무부처임에도 불구하고 2번밖에 참석하지 않았고, 참석해서도 자신들의 업무가 아니라거나 신청주의원칙에 따라 허가할 뿐이라는 답변만 되풀이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어 “환자와 의료계가 요구하고 복지부도 적극적인 제도 개선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식약처 홀로 반대하는 상황”이라며 “교과서에 나오는 활용법조차 제약사가 신청을 하지 않으면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는 문제가 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충분한 임상적 근거나 의학적 증거가 존재하더라도 제약사의 신청이 없으면 적응증을 확대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뒤로는 오프라벨을 허용할 경우 의약품의 허가심사라는 막강한 권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해 반대입장을 피력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임상에서의 필요성이나 환자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의약품의 허가범위를 조정하거나 적응증을 추가하는 방법은 제약사의 신청 외에는 없다”며 식약처의 전향적인 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특히 “복지부가 고시를 통해 일부 오프라벨에 대한 급여인정을 하고 있지만 제한적”이라며 “해외에서처럼 전문가의 판단을 제한하지 않으며 환자에게 혜택이 가는 방향으로 논의가 발전적으로 이뤄져야할 것”이라고 희망했다.

복지부 관계자 또한 “소아나 희귀질환의 경우 임상시험의 한계가 있을 수 있어 전문가나 환자의 의견을 받아 필요한 경우 허가 외라도 급여권으로 가져올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면서도 오프라벨의 보편적 사용을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식약처의 입장이 바뀌어야 한다는 뜻을 전했다.

일부 의료계 및 환자들의 요구에 의해 급여범위를 확대하고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허가범위 외 사용이 가능한 의료기관이 한정적이고 식약처의 승인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 일반 국민이나 의료기관이 사용할 수 없는 한계가 존재하는 만큼 이를 개선해야하지만 복지부만의 노력으로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식약처는 일련의 오프라벨에 대한 요구에 대해 “복지부의 소관”이라는 답으로 일관하며 직접적인 답변을 거부했다. 협의체에 참석했던 담당 사무관조차 “왜 식약처에 물어보는지 모르겠다”며 오프라벨에 대한 식약처의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이에 대해 협의체 관계자는 “의약품의 허가권한이라는 권력을 내려놓지는 못하겠고, 허가초과에 따른 부작용 등 약화사고에 대한 책임은 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서 이런 태도가 나오는 것 같다”고 풀이하며 “복지부조차 두손 두발 들었다”고 귀띔했다.

한편, 복지부는 2016년 약사법 상 지정된 의약품임상시험실시기관이 아닌 요양기관에서도 의료계 및 치과계의 요구에 따라 허가 범위를 초과해 사용가능한 약제를 심평원장이 공고하는 절차를 통해 지체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고시개정을 추진한 바 있다. 

하지만 식약처와 일부 약사출신 국회의원의 문제제기로 입법예고 과정에서 좌초됐다. 당시 식약처는 고시개정이 아닌 허가초과 사용을 허용할 수 있도록 약사법을 먼저 개정해야한다며 반대했고, 국회에서는 식약처의 승인절차를 거쳐야한다며 개정불가 입장을 밝혔다.

이와 관련 의협 관계자는 “사용범위를 제한하는 기관에서 제한 범위를 초과하는 것에 대한 승인을 거치라는 지적은 실현되기 어려운 제안이며 근본적으로 의약품의 허가와 전문가에 의한 의약품 처방은 다른 영역”이라며 국회와 식약처의 지적에 반박하기도 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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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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