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기반 범죄자 ‘교정’, 패러다임이 바뀐다

중독기반 범죄자 ‘교정’, 패러다임이 바뀐다

법무부, 교정교육에 VR(가상현실) 도입… 분리·감독에서 적극적 치료로

기사승인 2018-02-12 01:30:00
국내 교정체계가 변하고 있다. 범죄를 저지른 범법자들을 사회로부터 분리·감독하는 방식에서 재범방지를 위한 적극적인 행동교정으로 태도를 전환했다. 그 첫 시도가 ‘가상현실(Virtual Relity, 이하 VR)’을 활용한 치료다. 그동안 알코올 중독 범죄의 경우 처벌만으로는 교화가 어렵다는 한계가 있어 치료적 접근의 필요성이 제기돼왔다. ‘의지’와 상관없이 술을 마시는 중독의 특성 때문이다. 

이에 법무부는 2018년 1월부터 전국 11개 보호관찰소에서 반복적인 알코올 문제로 법원에서 보호관찰, 수강명령, 치료명령을 선고받은 약 5000명을 대상으로 VR치료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주취 범죄를 예방하고, 국민의 안전을 확보하는 데 VR치료는 어떤 효과가 있을까. VR치료가 진행되고 있는 인천보호관찰소를 찾았다.


◇ 현실 같은 체험, 생각·행동을 변화 시킨다

인천보호관찰소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메딕션컨소시엄이 개발하고 2016년 법무부 연구용역으로 효과를 일부 확인한 ‘알코올 중독 범죄자 VR치료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었다. 

프로그램을 통한 교육은 음주운전과 같은 고위험 상황이나 술자리에서의 알코올 권유, 부부싸움이나 직장 내 스트레스 유발환경, 술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는 폭력상황에 대한 화면을 3차원으로 반복해 보여주며 상황대처나 권유를 거절하는 훈련내용으로 구성돼있다. 

구체적으로 보호관찰대상자는 일상에서 배우자가 구박을 하거나 직장에서 동료들이 타박을 하는 등 술이 마시고 싶어지는 상황을 화면으로 시청한다. 이어 정면에서 구토를 하는 등 혐오스러운 상황을 보거나 직접 육성으로 거절의 말을 하도록 교육받는다. 

가상현실 속 자극으로 인한 분노나 흥분과 같은 감정상태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심박수를 측정해 ‘이상심박수’가 측정될 경우 Q-sound(감정이완 음악)를 들려주는 등 즉각적인 처치와 분석도 가능하다. 

현재 음주운전 중 사고로 보호관찰을 받고 있는 A씨(22)는 “입체적이라 현실적이다. 음주운전이나 음주상황에는 화면이 흔들려 술을 마신 것 같다”고 표현하며 “술을 줄이고, 술을 먹으면 운전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계속 하게 됐다. 후회도 많이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 알코올 의존증 VR치료, 2마리 토끼 잡는 방법

중독심리전문가이자 보호관찰소에서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는 이상규 계장은 “행동치료는 자발적인 참여가 효과적이지만 보호관찰대상자 대부분은 수동적”이라며 “일반교육의 효과가 적은 반면 VR치료는 체험형으로 구성돼 보다 적극적인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실감나는 콘텐츠로 제작해 자기노출과 몰입감을 높여 음주에 대한 폐해를 인식하고 금주나 절주를 유도하려 노력하고 있다”며 “직접 필요한 기능이나 콘텐츠를 요청해 적용하는 등 프로그램을 고도화해 범죄성을 개선하고 재범을 방지해 국민안전을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치료효과뿐 아니라 비용절감효과도 있다. 그는 “2만여명의 알코올 관련 사범 중 약 30%인 고위험군 6000여명의 심리치료비용으로 연간 약 43억2000만원 소요된다”며 “VR치료 도입 3년간 약 43억원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또 “고위험군의 재범률은 12%로 범죄에 따른 사회적 비용만 1인당 1500만원에 달한다”며 “VR치료를 통해 매년 2%p씩 재범을 감소시킬 경우 매년 약 18억원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법무부는 알코올 의존증 사범 VR치료를 위해 임상심리, 중독심리 전문가를 별도로 채용하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등의 협조를 얻어 프로그램을 제작·발전시켜 적용대상을 늘려나갈 방침이다.


 “VR치료, 효과적이지만 신중해야”

최근 가상현실(VR)을 이용한 치료가 활성화되는 분위기다. 특히 정신의학 및 심리치료 영역에서 VR기기가 적극 도입되고 있다. 최근에는 불안장애, 공황장애,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등의 영역을 넘어 도박, 마약, 알코올 중독으로까지 폭넓게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치료대상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잘못된 프로그램을 도입할 경우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어 사용에 주의가 요구된다. 이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중독치료의 일선에 선 강남을지병원 한창우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중독치료에서 가상현실이 도입된 배경과 치료효과는?

가상현실은 현재 환자들이 겪고 있는 불안감을 완화시켜주는 방법으로 시도됐고, 최근에는 환자가 자신의 중독문제를 드러내고 문제의 심각성을 좀 더 빨리 인식할 수 있도록 개발돼 활용되고 있다. 특히 가상현실을 통해 막연히 교과서적으로 전문가가 설명하던 방식에서 좀 더 실제에 가깝게 현재 환자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를 사실감 있게 드러내 보여줘 문제를 보다 확실히 인식하는데 도움이 돼 보다 적극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어 효과가 좋다.

▶ 법무부가 VR치료를 도입했다. 어떻게 보는가?

지금까지 법무부는 중독문제와 환자들을 처벌의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VR치료를 도입하는 모습은 앞으로 환자들을 치료받아야할 대상, 재활해야하는 대상으로 보기 시작한 것으로 비춰져 기대가 크다. 더구나 보호관찰대상자들 중 상당수는 알코올 중독 초기환자들로 보여 적극적인 치료와 상담이 이뤄진다면 치료효과가 훨씬 높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 주의해야할 점은 없나?

가상현실치료를 바로 환자들에게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환자들이 자신의 문제나 중독정도를 정확히 인식하고 교육받지 못할 경우 역효과가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최근 많이 활용하는 방법 중 하나는 환자가 가진 갈망을 일정수준 높인 후 혐오자극 등을 이용해 제어하는 형태다. 하지만 병 의식이 없거나 갈망 수준이 너무 높은 이들에게는 치료 후 알코올 섭취욕망을 더 끌어올리는 경우도 발생한다.

더구나 알코올은 뇌신경을 파괴시켜 인지기능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인지기능이 떨어지고 병의식이 낮은 경우 치료프로그램을 받아들이는데도 한계가 있고 효과도 낮다. 이에 반드시 전문가가 기본적인 교육과 가상현실의 원리, 치료와 개선 부분을 좀 더 자세히 이해시키고 프로그램을 이용해야 효과가 크다.

▶ 알코올 자가테스트와 의존치료에 중요한 점은?

CAGE라는 자가테스트법이 있다. 1) 내가 술을 끊으려고 고민해본 적이 있나, 2) 내가 술을 먹는 문제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은 적이 있나, 3) 내가 술 문제 때문에 죄책감을 가진 적이 있느냐, 4) 해장술을 먹은 적이 있느냐는 4가지 문항으로 구성됐다. 이 중 2가지만 해당되도 알코올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여러 문항이 해당된다면 술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가까운 병의원이나 보고소, 중독관리통합센터를 찾아 전문가와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

국내에서는 알코올 의존증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술에 대해 관대하기도 하고 많이 권하기도 하며 쉽게 끊거나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술로 문제가 생겨도 실수라고 치부한다. 하지만 알코올은 뇌에 손상을 주는 진행성 질환이다. 쉽게 재발하기도 한다. 술로 인해 실수를 반복하거나 제어할 수 없다면 문제가 있다는 분명한 병 의식을 가져야 한다. 잠깐의 실수, 잠시의 착각으로 문제가 벌어졌다고 보지 말고 스스로 중독을 의심해보고 적극적으로 상담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 

오준엽·전미옥 기자 oz@kukinews.com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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