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고객 끌어오려면 저녁에 술도 한 잔 해야 하는데 여성은 힘들어요”
하나은행의 여성 차별 채용으로 국민적 분노가 높아지는 가운데 이례적으로 은행권에서 채용시 남성을 우대해야 한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기업금융 등 인력 운용상 여성보다 남성의 필요성이 높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은행권의 만연한 여성차별주의를 잘 보여준다는 지적과 함께 많은 이들의 공분을 불러오고 있다.
5일 금융감독원과 심상정 의원실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2013년 하반기 채용과정에서 서류전형 단계부터 사전에 남녀 비율을 4:1로 정해 놓고 공개심사를 진행했다. 특히 최종 임원면접시 합격권 내의 여성 2명을 탈락시키고 대신 합격권 밖에 있는 남성 2명의 순위를 높여 남성 2명을 특혜 채용한 정황이 드러났다.
하나은행의 2015년과 2016년 여성 채용 상황도 비슷하다. 2015년 하나은행의 직원 채용시 신규 여성직원(대리·행원급) 비중은 각각 19.1%와 18.2%로 나타났다. 2013년 적용된 4:1 비율이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적용됐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다른 은행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신한·국민·우리·기업은행의 2015~2016년 신규 여성직원(대리·행원급) 비중은 19.5~38.8%를 기록했다. 신한은행의 2015년 여성채용 비중이 19.5%로 가장 낮았으며, 우리은행이 2016년 38.8%로 가장 높았다.
암암리에 소문이 돌고 있던 은행권의 신입행원 채용시 여성차별 관행이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은행에 취업을 원하는 여성은 물론 은행에서 근무하고 있는 여성 행원들은 좌절감을 나타내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은행권에서 여전히 “여자보다 남자가 더 쓸모 있다”는 반응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 채용 할당제가 아닌 남성 채용 할당제가 필요하다는 반응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에서 기업고객을 잡기 위해서는 저녁에 술도 한 잔 해야 하는데 여성이 술 대접하기는 어렵다. 또 지방에 있는 점포는 직원 하나만 발령 낼 때도 있는데 여성만 지방에 발령 낼 수 없다”며 “최근 남녀 시험 성적을 보면 여성이 남성보다 우수해 할당이 없을 경우 남성 직원이 부족해 질 수 있다”고 밝혔다.
다른 은행 관계자 역시 “은행에 남성이 필요한 부분이 있고 여성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 일반 텔러직군을 제외할 경우 인력 운용 차원에서 남자에 대한 수요가 높다”며 “특히 기업고객 분야가 남성에 대한 수요가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은 은행권에 만연한 남성우월주의 또는 남녀차별주의를 전제로 제시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여자가 남자보다 술 더 못 마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남녀차별의 시작이며, 술 접대 등의 정상적이지 않은 영업 방식을 고수하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정말 남자에 대한 수요가 높았다면 채용 대상을 세분화해 공개하고 채용을 진행했으면 되는 문제였다. 은행권의 만연한 차별주의가 지금의 채용비리 사태를 불러 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심상정 의원도 전날 이와 관련해 “공채는 대국민과의 약속이다. 공공성과 신뢰를 중시해야 할 은행이 채용 기준이나 자격 요건 등을 공개하지 않고 채용을 진행한 것은 국민과의 신뢰를 저버린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국내 남녀고용평등법 제7조는 “사업주는 근로자를 모집하거나 채용할 때 남녀를 차별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남녀고용평등법을 위반할 경우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 진다. 일각에서는 솜방망이에 불과한 처벌 수위가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