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몸통 박근혜 전 대통령이 1심에서 징역 24년과 벌금 180억원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4월17일 박 전 대통령이 재판에 넘겨진 이래 354일 만에 나온 사법부의 단죄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김세윤 부장판사)는 6일 박 전 대통령 혐의 18개 가운데 16개를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국민에 의해 선출된 원수이자 대통령으로서 헌법과 법률에 의해 권한을 행사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최순실씨와 공모해 기업에 재단 출연을 요구하고 최씨 설립의 회사에 광고 발주 등을 강요했다"며 "삼성과 롯데그룹을 합쳐 140억원이 넘는 거액의 뇌물을 수수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헌정질서 초유의 대통령 파면 사태에 이르렀는 바 주된 책임은 헌법상 책임을 방기하고 권한을 사인에게 나눠준 박 전 대통령과 국정을 농단한 최씨에게 있다고 봐야한다"며 "다시는 대통령이 권한을 남용해 나라를 혼란에 빠트리는 불행한 일이 없게 하기 위해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중형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박 전 대통령은 직권남용,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공무상 비밀누설 등 18개 혐의를 받는다. 재판부는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이하 K재단) 관련 직권남용, 강요부분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기업의 존립과 활동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 대통령과 청와대 경제수석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는 기업은 흔치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또 박 전 대통령이 '비선실세' 최씨, 안 전 경제수석과 공모해 현대차 그룹 관계자에게 KD 코퍼레이션이라는 회사와 납품 계약을 체결하도록 직권을 남용하고 강요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강요죄에 해당하는 협박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박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안 전 경제수석의 지시로 현대차 그룹이 KD 코퍼레이션과 납품계약을 맺었다고 본 것이다.
K재단 하남 체육시설 건립 비용 목적으로 롯데그룹이 70억원을 낸 부분은 강요와 제3자 뇌물 혐의가 모두 인정됐다. 박 전 대통령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이에 롯데 면세점 사업과 관련해 '부정한 청탁'이 오갔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신 회장과의 단독면담에서 K재단에 대한 지원을 요청한 사실이 없다고 했지만 검찰 조사에 의하면 요구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현대차 그룹에 KD코퍼레이션 광고 발주할 것을 요구한 혐의, 포스코에 펜싱팀을 창단하도록 압박한 혐의 역시 유죄로 판단했다. SK그룹의 경영 현안을 도와주는 대가로 K재단 해외전지훈련비 명목의 89억원을 내라고 요구한 혐의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이 최씨와 공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부터 최씨 딸 정유라씨의 승마 지원비 등 433억원 상당의 뇌물을 받거나 약속한 혐의 중에는 72억9000여만원만 뇌물액으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삼성이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낸 후원금 16억2800만원과 미르·K재단에 낸 출연금 204억원은 뇌물로 보기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삼성 승계작업과 관련해 상당한 언론 보도가 있었고 많은 국민들이 승계작업에 대해 알고있다"면서도 "형사처벌을 위해서는 부정한 청탁의 존재가 명확해야 하고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삼성과의 사이에 명시적·묵시적 청탁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이른바 '블랙리스트' 관련 혐의 역시 모두 유죄로 인정됐다.
박 전 대통령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조윤선 전 정무수석 등 참모진,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공무원 등과 공모해 정부 비판적 문화·예술인에 대한 지원을 배제하는 '블랙리스트' 사건에 개입한 혐의를 받는다. 박 전 대통령은 이와 관련 어떤 보고도 받지 않았고 지시한 적도 없다며 혐의를 부인해왔다. 그러나 재판부는 "청와대 직원 증언과 수석비서관회의 자료 등을 보면 보고받은 사실과, 이런 보고를 받고도 중단하라고 하지 않은 사실이 인정된다"면서 "이념적 성향이나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지원을 배제하는 것은 평등 원칙 등 헌법에 반하고 위법한 조치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노태강 전 문체부 국장과 2급 공무원 3명의 사직을 강요한 혐의 역시 유죄로 인정했다. 청와대 문건 유출 의혹에 대해서는 문건 47건 중 14건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의 재판 '보이콧'도 질타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구속기한이 연장된 뒤부터 "건강상의 이유"를 들며 재판에 불출석 해왔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피고인은 모든 잘못을 부인하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최씨에게 속았다거나 비서관이 행했다고 주장하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태도로 일관하며 책임을 떠넘겼다"고 지적했다.
이날 검찰은 '박 전 대통령 1심 선고 관련 입장'을 내고 "최종적으로는 법과 상식에 맞는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짧게 밝혔다. 청와대 역시 입장을 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나라 전체로 봐도 한 인생으로 봐도 가슴 아픈 일"이라며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 오늘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검찰은 앞서 지난 2월 박 전 대통령에게 "국정 운영을 총괄하는 책임을 국정에 한 번도 관여한 적 없는 최씨에게 맡겨 국가 위기사태를 초래한 장본인"이라며 징역 30년과 벌금 1185억원을 구형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