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73명의 시국 선언자 명단이 정부 지원 사업에서 비판적 인사를 배제하는 수단으로 쓰인 사실이 처음 확인됐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산하 민관합동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 개선위원회'(진상조사위)는 10일 오전 서울 광화문 KT 빌딩 진상조사위 사무실에서 언론 브리핑을 열었다.
진상조사위는 지난 2015~2016년 박근혜 정부가 9473명의 시국 선언자 명단을 근거로, '한불 수교 130주년 상호교류의 해' (한불수교) 사업과 관련해 불법적인 지원배제가 광범위하게 이뤄졌다고 밝혔다. 당시 한불수교 행사에는 국가 예산 100억원이 투입됐다.
이날 진상조사위는 입수한 9473명의 시국선언자 명단을 처음 공개했다. 해당 문건에는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 촉구선언 문화예술인 549인, 세월호 시국선언 문학인 754인, 문재인 후보 지지 선언 6517인,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지지 선언 1608인에 대한 언론 보도, 블로그 스크랩 자료 등이 포함됐다. 이 문건은 지난 2015년 5월 6~7일 출력됐으며 A4 용지 60쪽 분량이다.
이원재 진상조사위 대변인은 "'한불수교' 국제교류 행사에서 국정원은 블랙리스트 사찰과 배제 지시에 관여했고, 지시 이행을 위해 문체부 예술정책과, 영상콘텐츠산업과, 출판인쇄과 등 각 부서와 해외 문화홍보원, 프랑스한국대사관, 프랑스한국문화원, 한불 상호교류의 해 조직위원회 및 예술경영지원센터에 설치된 사무국 등이 블랙리스트 사전모의 및 실행에 관여했다"고 밝혔다.
이 대변인은 "이 문건은 문체부가 (블랙리스트 적용을 위해) 실제 사용한 문건"이라며 "진상조사위 결과 '한불 수교' 사업에서 블랙리스트 지시 이행을 위해 해외문화홍보원 실무자들이 출력본 형태 명단을 일일이 대조하며 지원 배제 여부를 검토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이날 진상조사위는 실제 분야별 블랙리스트 실행 사례도 공개했다. 국립극단 연극 '빛의 제국' 프랑스 공연에는 원작자 김영하 작가가 초청에서 배제됐다. '2015 프랑스 포럼 데 지마주'에는 영화 '변호인' '그때 그 사람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상계동 올림픽'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5개 작품이 배제됐다. 전시분야에서는 이응노 미술관 지원이 철회됐고 노순택 사진작가 작품이 교체됐다. 문학분야에서는 김연수·김애란·한강·편혜영·이창동·임철우 등을 파리도서전 참가자에서 배제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진상조사위는 이밖에도 '케이콘(K-CON) 2016 프랑스'가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사업 특혜를 위해 3일 만에 부실 심사된 정황과 지난 2015년 3월 프랑스한국대사관 대사로 부임한 모철민 전 교육문화수석이 'K-CON 2016 프랑스' 한식체험전시 사업 및 '프랑스 내 한국의 해' 폐막식 장소 변경 등에 부당 관여했던 일도 확인했다.
진상조사위는 "아직 드러내지 않은 사찰·검열·배제 사례가 더 많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면서 "박근혜 정부는 국가기관을 총동원해 블랙리스트 실행 및 최순실 예산 등 특혜를 행했다. 이는 문화예술 가치를 근본적으로 훼손한 중대한 국가범죄"라고 지적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