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 : 아래 기사는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는 분은 영화 감상 후 기사를 읽기 바랍니다.>
# 기대를 충족하는 화제작, 그런데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 1부 아닌가요?
부피도 무게도 대단한 영화다. 거대한 스케일에 맞는 완성도를 자랑한다. 1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답게 마블 스튜디오의 히어로가 총 출동해 러닝타임 내내 싸우고 또 싸운다. 대규모 전투 장면과 영화 전반의 CG를 보고 있자면 화려한 볼거리라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다. 재미있는 영화임은 분명하다. 빌런 타노스의 존재도 매력적이다. 타노스는 확고한 사명을 가지고 우주 인구 절반을 감축하려 한다. 영화가 끝난 후 관객은 타노스가 던진 질문을 떠올리며 다음편을 궁금해 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지점은 ‘어벤져스3’의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어벤져스3’은 ‘어벤져스4’를 위한 전반전일 뿐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한 편의 완결성을 지녔는지에 대해 묻는다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어벤져스3’ ‘어벤져스4’가 아니라 처음 기획했던 것처럼 ‘인피니티 워’를 두 편으로 제작했다면 어땠을까. 같은 내용이라도 보다 적절한 목차 정리가 필요했다.
인세현 기자
# 마블의 지난 10년, 그리고 앞으로의 10년
마블 스튜디오 시리즈를 챙겨본 팬에게는 어느 때보다 큰 환호를, 그렇지 않은 관객에게는 물음표를 받을 영화다. 이전 시리즈를 챙겨보지 않아도 감상에 큰 무리가 없었던 ‘어벤져스2’와는 다르다. 최근 등장한 새로운 캐릭터와 다른 영화에서 진행된 설정을 주축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진입 장벽이 높은 편이다. 앞으로 개봉할 ‘어벤져스’를 즐기려면 모든 마블 시리즈를 꼼꼼히 챙겨봐야 한다는 무언의 협박처럼 들린다.
모든 히어로가 한 명의 빌런에게 쓰러지는 암울한 영화에 ‘마블 10주년의 클라이막스’란 수식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마블의 지난 10년보다는 앞으로의 10년에 초점을 맞춘 영화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그 핵심 중 하나가 우주로의 무대 확장이다. 어벤져스에게 지구는 좁다. 앞으로도 어벤져스에는 새로운 멤버들이 추가될 것이고, 그들의 힘은 점점 강해질 것이다. 반대로 이들이 뭉쳐야 할 이유를 만들어줄 위협적인 악당을 지구에서 찾기는 힘들어졌다. 스스로 만들어낸 괴물을 상대하거나(어벤져스2), 팀을 나눠 내전(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을 벌이는 것도 한두 번이다. 공간도 문제다. 와칸다의 평원이 아닌 이상, 평범한 시민들의 희생 없이 마음껏 전투를 치를 무대가 마땅치 않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절반 이상이 우주에서 펼쳐지고, 외계인인 토르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멤버들 비중이 커진 건 우연이 아니다.
마블은 지난 10년 동안 소수 마니아층이 향유하던 히어로 영화를 대중적인 영역으로 끌어냈다. 그 결과 아이언 맨이나 캡틴 아메리카, 블랙 팬서를 좋아한다고 말해도 마니아 취급을 받지 않는 시대가 됐다. 그랬던 마블이 다시 마니아층을 위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새로운 진화 과정일까, 아니면 위험한 도박일까. ‘어벤져스4’를 기다려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이준범 기자
# “말이 되는 소리를 해” VS “말이 안 되니까 보는 거지”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이 타노스와 맞붙을때만 해도 시큰둥했다. 우주를 정복하고 노바 제국을 꺾고 인피니티 스톤을 빼앗아 온 빌런을 아이언맨 혼자서 무찌르리란 기대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머가 벗겨지고 토니 스타크가 타노스에게 한 대씩 맞을 때마다 ‘허’ 소리가 났다. 트레이닝 복을 입은 토니 스타크의 얼굴을 보니, 아머를 벗으면 그냥 인간 1이라는 것이 적나라하게 보여져서다. 그 대비에 충격을 받은 건 아니다.
아니, 그러면 나도 아머를 입으면 타노스랑 1대 1 ’맞다이’가 가능하단 말인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는 작품 내내 끊임없이 고도로 발달한 과학을 보여주지만, 그와 대비해 영 아날로그한(?) 등장인물들의 모습도 남김없이 보여준다. 우주에서 몇만 광년을 점프해 날아다니는 피터 퀼(크리스 프랫)은 잘 짜인 근육의 신을 구조해놓고 그와 불행한 가족사로 자존심 대결을 한다. 행성 간 광속이동이 가능한 날아다니는 거대한 도넛 우주선이 지구에 나타났는데도 어떤 대기폭발도 없었다는 점에 대해 태클을 걸 수는 없다. 그런 우주선을 굴리면서도 인간들과 원시적 주먹다짐을 하고 있는 악당들부터 설명해야 할 테니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설정상 최고의 두뇌를 가지고 있는 와칸다의 슈리 공주(레티티아 라이트)는 비전의 슈냅스 세팅을 논하며 배너 박사(마크 러팔로)에게 우월감을 느낀다. 그야 백인들이 세상을 구한다며 날뛰더니 자신들보다 수준이 낮은 과학 기술로 덤비고 있는 모습을 보면 우스울 수도 있지. 그렇지만 꼭 그 와중에 그러고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타노스의 건틀릿을 벗기느라 몇 명이 달라붙어 있는 꼴을 보고도 힘을 보탤 생각은 커녕 제 용건부터 묻는 피터 퀼은…. 시나리오 진행을 위해 그랬다 치자. 세상에는 어른의 사정이라는 것도 있다.
고도로 발달한 과학의 최종 산물이라고 봐도 무방한 비전(폴 베타니)이 완다(엘리자베스 올슨)와 인간으로 변장해가면서까지 연애하는 부분을 보면,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 같은 것을 21세기에 떠올리고 있고 있는 내가 너무나 촌스러운 것은 아닌지 아득한 심정이 돼 버린다. 뭐, 생각해 보면 우주를 날아다니는 악당이 멜서스의 인구론을 논하고 있는데 그런 게 다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토르 3'의 헬라(케이트 블란쳇)는 테서랙트를 보고 장난감이라고 논하며 로키(톰 히들스턴)가 가진 인피니티 스톤에 흥미라고는 1그램도 보이지 않았다. 가공할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헬라를 물리친 토르와 로키는 타노스에게 시작부터 깨져나갔다. 말이 안 돼도 괜찮다. 어쨌든 ‘어벤져스’는 1000만 관객이 볼 테니까.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