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병원 설립허용, 원격의료 민간확대, 드럭스토어 활성화로 대표되는 의료민영화를 정조준한 규제개혁과제가 기획재정부에 제출됐다. 자유한국당 등 야권에서도 서비스발전기본법과 규제프리존특별법을 중점처리법안에 포함시켜 논의한 바 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개원의사협의회와 보건의료노조 등 진보단체들은 의료영리화에 대한 요구가 다시 고개를 든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 “영리의료법인 허용으로 최대 37만여개 일자리 창출”
한국경영자총협회(회장 손경식, 이하 경총)는 지난 15일 9가지 과제로 구성된 ‘혁신성장 규제개혁 과제’을 기획재정부에 건의했다고 17일 밝혔다. 회원사를 비롯해 산업현장에서 일자리창출과 혁신성장을 위해 꼽은 규제개혁과제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렇게 취합된 9대 과제에는 ▶인터넷전문은행 은산분리 완화 ▶프랜차이즈산업 규제개선 ▶산업과 경제의 디지털화에 따른 노동관계법 개정 ▶5G투자 지원확대 ▶고령자에 대한 파견 허용업무 규제폐지의 노동 및 산업관련 고제 5가지와 보건의료관련 과제 4가지가 포함됐다.
보건의료관련 과제로는 의료산업의 민간투자 및 영역확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영리병원 설립허용 ▶원격의료 규제개선 ▶드럭스토어 산업 활성화를 포함해 보건의료산업과 시장 변화에 발맞춘 ▶의사·간호사 인력공급 확대를 담았다.
특히 경총은 영리법인 병원설립 금지 등 진입규제로 인해 의료서비스 산업의 성장 및 일자리 창출 가능성을 저해하고, 일부에서 우려하는 영리병원 허용으로 인한 당연지정제 폐지 및 공공의료의 질적 저하는 현실성이 낮은 주장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영리법인도 의료기관 개설이 가능하도록 의료법 33조2항을 개정, 민간자본 유입을 통해 병원 신축 등에 소요되는 초기비용 조달을 용이하게 하고, ‘영리+비영리’ 경쟁체계로 전환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만약 영리의료법인이 허용되면 바이오·헬스·식품·화장품 등과 상호연계가 가능해져 동반상승효과를 불러올 수 있으며, 현국경제연구원 2014년 연구결과를 근거로 2020년 생산유발효과 62조4000억원, 취업유발효과 37만4000명에 이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 “원격의료, 드럭스토어 활성화가 국민을 위하는 길”
영리법인의 의료기관 개설허용이 의료서비스 인프라 확충과 일자리 확대라는 산업적 측면에서의 주장이라면, 경총이 제안한 원격의료 및 드럭스토어 활성화는 의료사각지대를 줄이고 주변산업의 동반성장에 초점을 맞춘 주장으로 풀이된다.
먼저, 경총은 원격의료서비스 활성화를 통해 신체와 장소적 제약으로 인해 의료사각지대가 발생하는 한편 새로운 의료기기 도입 및 확산에도 걸림돌이 되는 만큼 의료법 34조1항을 개정해 만성질환자 혹은 취약지 거주자 등을 위해 의료인-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해야한다고 설파했다.
의료취약지 및 장기요양시설 등에서 보건복지부가 추진한 시범사업 결과 안전성에 문제가 없었으며, 동네의원 만성질환 원격의료 시범사업에서도 임상적 유효성과 유용성이 인정된 반면, 원격의료로 인해 발생할 과잉진료 및 의료사고 등의 부작용은 충분히 보완가능해 도입에 무리가 없다고 봤다.
약사 또는 한약사가 아니면 약국을 개설할 수 없도록 해 좀처럼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드럭스토어 사업의 개편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적어도 24시간 편의점 등에서 처방 없이 판매하고 있는 안전상비의약품의 판매만이라도 가능하도록 규제를 완화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2007년 이후 연 3058명으로 제한된 의과대학 정원을 확대해 지역별 의사 인건비 및 인력수급 격차를 완화하고,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등 정책 신설에 따른 간호사 수요 증가에 발맞춘 간호 인력 현실화를 통해 국민의 의료접근성 향상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제출했다.
이와 관련 손경식 경총회장은 “규제개혁이 잃어버린 경제 활력을 회복하고 심각한 일자리 문제를 해소하는 가장 효과적인 대책”이라며 “영리병원 설립, 원격의료 허용 등 부가가치가 높은 의료산업에 대한 개혁이 이뤄질 경우 일자리 창출효과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 보건의료노조, “의료제도 망가뜨리는 민심역행 개악”
경총의 이 같은 주장에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하 보건노조)은 “의료영리화 정책추진을 통한 일자리 확대는 틀린 방식이며, 그렇게 만들어진 일자리는 병원비 폭등과 의료불평등 심화, 의료접근성 악화 등 환자와 국민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힐 뿐”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경총이 제시한 영리병원 설립허용과 원격의료 허용은 촛불민심의 요구인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한 개혁과제에 역행하는 의료적폐 청산대상 1호”라면서 “(오히려) 공공의료 확충과 민간병원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의료전달체계 확립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원격의료에 대해서도 “재벌자본에게는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겠지만 의료사고 위험증가, 환자쏠림현상 심화, 지역적 의료불균형 확대 등 우리나라 의료제도에 심각한 피해를 입힐 것”이라며 원격의료가 아닌 다른 차원의 의료접근성 향상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보건의료분야 일자리 창출도 영리병원 및 원격의료 도입을 통해 이루기보다 환자안전과 의료서비스 질 향상을 담보하고 의료공공성을 강화하는 측면에서 선순환 방식으로 이뤄져야한다고 보고 경총이 제안한 규제개혁과제를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대한개원의협의회 또한 “박근혜 정부 시절 무분별하게 기업의 이익을 위해 추진됐던 법안과 제도들이 정상으로 되돌려지는 상황에서 비의료인의 무면허 의료행위를 조장하고, 의사의 고유 전문영역을 침해하는 서비스발전기본법과 규제프리존법 등의 재추진은 즉각 중지돼야할 것”이라며 관련 법안이 강행될 경우 전면 투쟁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한편,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지난 8일 우버나 에어비앤비, 원격의료 등을 직접 거론하며 “해외에서는 되는데 우리나라에서만 안 되는 규제에 대한 개선책을 9월 말까지 내놓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에 영리병원 및 원격의료에 부정적 입장을 내놓고 있는 보건복지부와의 의견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