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환아들의 고통스런 학교생활

끝나지 않은 환아들의 고통스런 학교생활

기사승인 2018-06-25 05:00:00
지난해 이맘때, 제1형 당뇨병 흔히 소아당뇨를 앓고 있는 학생들이 학교 화장실에 숨어 인슐린 주사를 높고, 위급상황이 발생해도 도움을 받기 어렵다는 문제가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국무조정실은 논란이 확산되자 지난해 11월 ‘어린이집, 학교 내 소아당뇨 어린이 보호대책(안)’을 내놨다. 하지만 논란은 좀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자녀의 혈당관리를 위해 국내에서 허가받지 못한 연속혈당측정기를 해외에서 수입, 이를 개조해 사용하고, 일부 환아 부모들의 구매를 도왔던 김미영(41)씨가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로부터 무허가 의료기기 제조판매혐의로 검찰에 송치되는 등 고초를 치렀다. 이 외에도 학교현장에서도 보건교사와 학부모, 학생들 간의 갈등과 대립은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더 있다. 소아당뇨를 앓고 있는 환아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여러 제도와 장치가 마련되는 등 학교 내 보건환경 개선이 이뤄지고는 있지만, 소아당뇨에 한정된 정책이나 대책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그 마저도 지지부진 정부계획보다 지연되고 있다.

여기에 어린이집은 여전히 관리사각에 놓여있고, 소아당뇨를 제외한 3000여명의 특별관리대상 어린이나 건강고위험군에 포함되진 않지만 보건인력의 관리가 필요한 아이들은 정부의 관심 밖에서 여전히 소외된 채 고통 받고 있다.


◇ 늦어지는 소아당뇨환아 정부지원대책

소아당뇨 아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쏠리기 시작한 초창기, 문제의 핵심은 선천적인 인슐린 분비 문제로 인해 저학년을 중심으로 스스로 혈당관리를 하기 어려운 아이들이 학교에서 방치되고, 소외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소아당뇨에 대한 주변 학우들과 교사들의 부족한 이해와 부정적 인식에 상처받고, 하루에도 4~5번 스스로의 몸에 피를 내고 주사바늘을 찔러야한다는 아픔,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것이 세간에 알려지면서부터다.

이에 국무조정실은 교육부와 보건복지부, 식약처와 논의를 거쳐 대책을 내놨다. 주요 내용은 ▶소아당뇨 어린이 재학현황 조사·관리 ▶국공립 유치원 및 어린이집 우선입학 ▶보건인력 우선배치 ▶가이드라인 마련과 보건인력 확충 ▶직무교육 개선·확대를 약속했다.

여기에 ▶안전한 독립적 투약 공간 마련 및 응급의약품 교내보관 지원 ▶혈당관리 의료기기 건강보험 급여지급 등 사용지원 확대 ▶해외 의료기기 수입·사용 관련 제도개선 ▶소아당뇨 정보제공 및 인식개선 등도 언급했다. 그리고 이들 개선사항을 14가지로 세분화해 18년도 하반기까지 사업별로 추진·개선해나가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그러나 당초 정부의 계획과 달리 18년 상반기가 마무리돼가는 지금까지 달라진 점은 2~3가지에 그쳤다. 재학생 현황조사가 마무리됐고, 직무교육이 시작됐으며, 학교보건법 개정에 따라 응급상황에서 보건교사가 글루카곤을 주사할 수 있게 된 것이 전부다.


실제 교육부는 지난 22일까지도 관련 단체의 의견을 받았다. 교육부는 “국무조정실에서 발표한 내용을 점진적으로 추진해나가며 추가적인 개선사항이 있는지 여부를 문의하는 간담회의 연장선”이라고 답변했다. 

그렇지만 교육부가 소아당뇨인협회 등에 전달한 공문을 살펴보면, 올바른 인식형성을 위한 학생 및 교직원 교육, 인슐린 주사를 위한 교내 공간 및 여건 개선, 보건교사의 직접주사 병행 등 그간 논의하고 국무조정실에서 발표한 내용에 대한 검토의견을 요청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게다가 정부는 최근 유관단체들과 가진 간담회에서는 앞서 발표된 혹은 약속된 개선과제들이 일부 미뤄지거나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7월 1일 추가될 예정이었던 연속혈당측정기 소모품에 대한 보험급여가 제외된 것으로 확인됐다.

복지부는 “보험급여 예정이었던 소모성 재료 중 인슐린펌프 2종을 제외한 연속혈당측정기 소모품을 일단 제외하고 금액결정 등 빠른 시일 내 용역을 통해 별도내용으로 7월말 또는 8월 초경 추가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여기에 18년 상반기로 계획했던 당뇨병 교육 매뉴얼 제작 및 보급은 대한소아내분비학회와의 수의계약을 채결, 11월 완성을 목표로 진행하고 있으며 보건교사 연수교육 등도 유관학회와 상의해 진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하반기를 목표로 했던 교내 소아당뇨 어린이 안전 투약공간 마련이나 응급의약품의 어린이집 및 학교 보관, 연속혈당측정기 등 의료기기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화 등은 계속 진행 중으로 마무리되지 못했다.


◇ 여전한 대립 속 소아당뇨 아닌 다른 아이들은… 홀대?

결국 사회적 문제가 된 후 1년여가 지났지만 논란의 핵심은 제대로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 가운데 학교 현장에서는 직접 주사를 놓을 수 없어 혈당조절을 못하는 자녀를 두고 고혈당 부작용을 걱정하는 학부모와 복지부 유권해석에 기대 주사를 놓아주거나 옆에서 교육하는 보건교사들의 갈등은 지속되고 있다.

김선아 보건교사회 이사는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평생 혈당관리를 해야 하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보건교사가 직접 인슐린 주사를 놔주기보다 올바른 주사나 관리방법을 교육하고 지지해주는 역할을 수행해야한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일부 학부모들은 여전히 불만”이라고 전했다.

이어 “논의는 계속됐지만 아직까지 보건교사가 1형당뇨 환아에게 인슐린을 투여하는 것은 의료법 제27조와 약사법 2조를 위반하는 행위”라며 “의료기관이 아닌 학교에서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유권해석만으로 (주사행위를) 하기에는 상당한 부담”이라고 토로했다.

유치원 혹은 초등학교 저학년 소아당뇨 환아를 자녀로 둔 학부모들이 스스로의 죄책감과 자녀에 대한 안쓰러움, 주사행위에 대한 두려움으로 보건교사 등 의료인이 모든 것을 대신해주기를 기대하고, 안도하려는 경향을 보이지만 현실적인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차미향 보건교사회장 또한 “건강상태, 식사량, 활동량, 스트레스 정도, 주사부위 등을 고려해 인슐린 용량을 정해 투약해야하는 만큼 보건교사가 이를 담당하는 것은 간호사의 업무영역을 벗어나는 것”이라고 분명히 하며 “아이들 스스로 질병을 관리할 수 있고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학교생활을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성취감을 향상시켜줘야 한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일련의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이처럼 인슐린 주사를 직접 놔달라는 학부모와 의료법 위반 소지가 있는데다 불상사가 발생할 경우 그 책임을 누가 져야하느냐의 문제에서 고뇌하는 보건교사 간의 대립각을 완화하고 환아들이 학교생활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여건을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일반인도 간단한 교육만으로 가능한 인슐린 주사와 혈당검사를 보건교사가 하는 것은 의료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복지부의 행정해석에 기대 불법이 아니라고 우겨야하는 현실을 개선하고 환아의 건강한 삶을 위해 학부모와 보건교사가 손을 잡고 가정과 학교에서 건강을 챙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법 개정 움직임은 아직 관측되지 않고 있다. 국회나 정부는 학부모와 보건교사의 신뢰와 인식 문제로 판단하는 모습이다. 이에 대해 보건교사회는 “소아당뇨의 경우 간호사인 보건교사의 업무영역을 벗어날 여지가 있고 그로 인해 책임이 지워지는 만큼 분명한 보건교사의 업무범위와 명확한 판단기준, 책임의 범위 등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나아가 “지금의 대책은 너무 소아당뇨에 편중돼있다”며 “충분한 교육과 인식으로 학교에서 저혈당 혹은 고혈당으로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오히려 다른 건강고위험아동이나 건강상 보호·관찰이 필요한 학생들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부족하다. 소아당뇨환아 대책과 함께 학생들의 건강관리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과 정책적 관심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한 보건교사는 “영유아 건강검진과 직장인 건강검진 사이의 청소년기에 대한 관리만 교육부 소관으로 귀속돼 생애전주기 건강관리에 구멍이 뚫린 상황”이라며 “비만도나 영양상태 등에 대한 개괄적 정보만을 취합하고, 그마저도 제대로 유지·관리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보다 면밀한 검진과 선천적 혹은 후천적 질병 등 건강상태에 대한 정보관리가 필요하다”면서 “청소년기 건강관리의 주체를 복지부로 이관해 생애주기별 건강관리가 이뤄지고, 이를 토대로 맞춤형 학업 계획과 교육이 제공돼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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