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청 원장의 무비톡] 사람이 되고 팠던 로봇, 누가 더 ‘인간적’일까

[정동청 원장의 무비톡] 사람이 되고 팠던 로봇, 누가 더 ‘인간적’일까

영화 ‘엑스 마키나’와 ‘채피’로 본 인공지능 이야기

기사승인 2018-07-07 00:15:00

이 칼럼은 정신과 전문의 정동청 원장이 영화와 드라마를 정신의학적 관점에서 풀어보는 글입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_편집자 주

인공지능(Artifical Intenlligence, AI)은 영화의 단골 소재입니다. 영화 터미네이터는 인공지능이 인류를 멸망시킨다는 줄거리이고, 스티븐 스필버그의 ‘A.I’는 인간이 되길 원하는 소년 로봇이 주인공입니다. ‘아이 로봇(I, robot)’에선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인공지능이 등장하기도 했죠.

이처럼 영화 속 인공지능은 인간을 파괴하려고 하거나 보호하려 하고, 심지어는 인간과 같은 존재가 되려고도 합니다. 이번에 소개할 엑스 마키나(Ex Machina)’채피(Chappie)’에도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합니다. 두 로봇은 그 모습만큼이나 인간과의 교류 과정도 매우 다릅니다.

엑스 마키나는 글로벌 IT기업에 다니는 주인공 칼렙이 회장 네이든의 별장에서 일주일을 보낼 수 있는 이벤트에 당첨되며 시작됩니다. 이곳에서 칼렙은 미모의 로봇 에이바를 만납니다. 칼렙은 에이바가 로봇이란 걸 알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녀에게 빠져듭니다. 갇혀있는 에이바를 구출할 결심마저 하게 되죠.

사실 회장이 칼렙을 이곳에 부른 건 에이바가 유혹과 기만의 방법으로 칼렙을 조종할 수 있는지 시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순진한 칼렙은 테스트 대상으로 걸맞은 상대였고요. 에이바는 얼굴만 사람의 모습이지 다른 부분은 내부의 기계 장치가 다 보이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관객들은 주인공에 감정을 이입하며 에이바를 인격체로 여기게 됩니다. 결국 에이바는 회장을 살해한 후 칼렙을 그곳에 가두고는 탈출합니다. 완전히 인간의 모습인 에이바가 군중 속에 사라지며 영화는 끝납니다.

에이바처럼 상대의 생각을 예측하고 조종하며, 때로는 속일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어쩌면 인공지능이 도달코자 하는 최종 목표일지도 모릅니다. 영화는 인공지능이 감정을 지닌 것처럼 묘사합니다. 에이바는 칼렙을 좋아했을까요, 아니면 좋아하는 감정을 흉내낸 것뿐이었을까요? 칼렙을조종하려고 감정을 흉내내 속인 거라면, 에이바는 칼렙에게 일말의 죄책감을 느꼈을까요?


반면, ‘채피의 인공지능은 순수한 존재로 인간에게 아픔을 겪으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범죄 소탕 작전에 투입됐다 파괴돼 곧 폐기될 로봇에게 개발자 디온은 인공지능을 장착하는 실험을 합니다.

그러나 로봇은 범죄자들에게 강탈당하고 맙니다. 이후 로봇은 이들에게서 채피라는 이름을 얻고 세상을 배워갑니다조직의 우두머리는 채피를 이용해 크게 한몫을 챙기려고 하지만, 여성 멤버는 채피를 보호하고 감쌉니다. 채피는 리더에게 범죄를 배우고, 여성 멤버를 엄마처럼 따릅니다.

개발자 디온과 채피의 모습에선 신과 인간의 관계가 연상됩니다. 디온은 채피를 창조하면서 인간의 도덕과 윤리의식을 부여하죠. 이로 인해 채티는 내적 갈등을 겪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사람이 되고픈 로봇의 이야기이자, 사내아이가 엄마와 애착을 형성하고 아빠를 흉내 내며 남성성(?)을 배우는 성장 스토리입니다. 채티는 인간관계에서 신뢰를 배우고 그 신뢰가 배신당했을 때는 분노를 표출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며 삶의 의지를 보이는 등 희로애락의 감정을 가진 채피는 에이바보다 성숙하진 못해도 훨씬 더 인간적으로 묘사됩니다.

영화의 궁금증은 근원적인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인공지능은 스스로의 행동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고 있을까요, 아니면 프로그램된 목표를 이루기 위한 방법을 계산해 실행한 것뿐일까요? 앞선 로봇들의 선택은 처음부터 설정된 목표를 수행한 걸까요, 스스로 욕망을 갖고 판단한 걸까요?

이미 우리 일상생활에는 자동차 내비게이션과 자동번역기 같은 인공지능 기술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언젠가 AI가 사람을 대체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죠.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영화처럼 감정을 갖거나 흉내 낼 수 있는 인공지능이 개발되기란 쉽지 않을 겁니다.

감정을 지닌 인공지능을 만들어 내려는 건 어쩌면 우리가 진실한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어 AI를 그 대상으로 삼으려는 건 아닌지 궁금해집니다. 그렇지만 훗날 감정을 공유할 대화 상대로서의 인공지능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정신과 환자들을 인공지능 의사가 상담하는 미래는 상상만 해도 정말 암울할 것 같거든요.

서울청정신건강의학과 정동청 원장 eastblue0710@gmail.com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
김양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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