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신세계’, ‘대호’로 시나리오 작가에서 감독으로 얼굴을 알린 박훈정 감독은 영화 ‘마녀’를 통해 인간 본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듯 보였다.
과연, 집단 속에서 생존을 위해 남을 배신하고 치이고 허덕이며 사는 요즘 현대인들은 태어났을 때부터 악한 존재였을까, 선한 존재였을까.
영화 마녀는 인간의 본성, 특히 잠재되어 있는 악을 뇌와 기억이라는 두 키워드로 플롯을 설정해 기억을 잃고 살아온 여고생 자윤의 회상과 그의 앞에 급작스럽게 닥치는 새로운 인물, 사건으로 더욱 큰 혼란 속에 우리를 밀어 넣는다.
박훈정의 영화는 주인공과 적대자의 팽팽한 대립의 서스펜스를 잘 구축한다. ‘악마를 보았다’, ‘부당거래’, ‘신세계’가 그랬다.
스토리 구조 안에서 미드포인트를 지나 피치로 넘어가는 지점에 등장인물들은 놀라운 속도감으로 긴장감을 극대화시킨다.
영화 마녀 역시 미드포인트 지점 전은 그저 순한 어린 여고생의 풋풋함과 약자의 역할을 그려오다, 피치II에 도달했을 때는 전형적인 선과 악의 갈등 구조를 보이며 조직에 의해 강제로 뇌 개조 수술에 대한 피비린내 나는 복수극을 펼친다.
마녀의 구자윤(김다미 분) 캐릭터는 여자배우를 꿈꾸는 친구들이라면 누구든지 욕심을 낼 수밖에 없는 캐릭터다. 약해보이면서도 누구도 이길 수 없는 절대파워를 지닌 구자윤은 여성성과 동시에 무엇보다 강력한 남성적 질서를 통쾌하게 무너뜨리고 군림하는 툼레이더 라라 크로프트를 연상시킨다.
영화 ‘악녀’ 김옥빈과 ‘루시’ 스칼렛 요한슨 캐릭터도 오버랩된다. 혼자서 수십 명의 남자들을 소탕하지만 이성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면서 동시에 따뜻한 마음을 지닌 여전사 캐릭터는 마녀 구자윤에도 묻어나있다.
박훈정 감독은 “사람들은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다 악마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이말에 동의한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자기중심적이며 이기주의 성향을 지니고 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폄훼하고 뒷담화하며 자신의 지론을 펼친다. 선악의 경계도 모호해지고 있으며, 인간의 본성은 선함보다는 악함에 치우쳐 있는 듯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인간은 무엇인가 모방하는 존재라는 것처럼 인간은 삶속에서 선함보다는 악함을 자주 모방하고 따라한다.
‘마녀’ 속에서도 닥터 백(조민수 분)이 구자윤에게 “너한테 폭력은 본성이라고 말하지 않나” 대사는 영화가 나타내는 인간은 악의 본질을 내포하고 있다를 방증한다.
스릴러의 대가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영화 ‘세븐’은 20년 전에 봤지만, 아직도 미장센과 플롯이 생생하다.
스산한 무언가의 비밀을 감춘 영화 세븐은 런닝 타임 내내 어두움, 칙칙한 빗소리를 등장시키며 어둡고 탁한 이미지로 상영 내내 긴장감을 유발시킨다.
성서의 7가지 죄악을 따라 발생하는 사건들을 추적하는 형사들은 식탐, 탐욕, 나태, 분노, 교만, 욕정, 시기의 7가지 인간들이 저지른 죄악을 끝까지 추적한다.
다만, 세븐과 다른 측면에서 마녀는 선과 악의 구분 속에서 인간이 만들어낸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신선하게 표현했다.
특히, 신인 김다미의 연기는 ‘쌩초보’ 배우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집중력과 초월적 존재의 다양한 감정을 드러내며 선함과 악함의 양극단을 잘 오갔다.
상대 등장인물과의 앙상블 속에서 받아치는 리액션 연기는 안정적이며 어색함이 없는 강한 여전사 캐릭터로 승화됐다.
마녀에서 귀공자역을 맡았던 최우식 역시 구자윤을 향한 위협의 수위를 높이며 긴장감을 배가시킨다.
차갑고 딱딱하기보다 유약하면서도 개구진 악당 같았던 귀공자 캐릭터는 상대 적대자에게 장난치듯 악랄하면서 복수심에 불타는 모습을 입체적으로 연기했다.
마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극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올 듯 한 판타지 인물들과 시골사람들의 대칭이다. 판타지 만화캐릭터로만 마녀가 그려졌다면, 스토리는 누구나 예상하는 그림으로 치우쳤을지 모른다.
마녀는 남성과 여성의 젠더 대결을 그렸다기보다는, 여성 중심의 서사에서 성인 여성이 아닌 여고생 캐릭터로 승부를 건 대목이 애틋하고 더욱 자연스러웠다.
이호규 남예종예술실용전문학교 연기예술학과 교수·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