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원이 있어도 내 집 장만이 어려운 현실이다. 하지만 영화 ‘다운사이징’에서는 1억원에 3층짜리 초호화 주택에, 돈 많은 백수로 평생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삶이 주어진다. 영화는 신체의 축소 기술이 모든 인간 소비의 축소를 가져오고 부를 키워준다는 설정이다.
하지만 영화는 주인공 폴(맷 데이먼)을 통해 경제적 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경제적 부로 인한 지상낙원에도 불구하고 신체가 축소된 소인 사회 내에서도 빈부격차 등의 문제는 대인 사회와 마찬가지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영화 속에서만 해당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부동산시장에는 영화에서처럼 다운사이징 바람이 불고 있다. 1인 가구의 증가 때문이다. 이에 따라 수요에 비해 공급이 상대적으로 적은 초소형아파트들이 인기다. 하지만 청년 1인 가구를 위한 주거복지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1인 가구는 2018년 현재 전체 가구의 29.1%를 차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2010년 23.9%에서 무려 5.2%p너 상승한 셈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청년 1인 가구의 상승률이 가장 컸다. 15∼29세 1인 가구는 6만2000가구(10.7%)가 늘어나 전체 연령대 중 증가 폭이 가장 컸다. 취업자 청년층 1인 가구는 지난해 주로 20대 후반을 중심으로 빠르게 늘어나면서 2016년 증가율(4.1%)의 두 배를 넘어섰다. 15∼29세 1인 가구가 전체 취업자 1인 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7.7%에서 18.8%로 1.1%포인트 상승했다. 대졸 이상 취업자 1인 가구도 같은 기간 9만1천가구(6.5%) 늘어나 증가 폭이 가장 컸다.
이에 따라 주거문화에도 1인 가구에 맞춘 변화가 불고 있다. 바로 초소형 아파트다. 온나라부동산 자료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전용 60㎡이하 전국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1만7528건으로 전용 61~85㎡ 아파트 거래량(1만4593가구) 보다 20%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초소형 아파트란 전용면적 59㎡보다 작은 평면을 가진 아파트로 1~2인 가구 증가 등의 인구구조 변화를 반영한 건축형태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초소형 아파트가 각광받으면서 건설사들이 효율적인 공간을 앞세운 초소형 아파트 공급을 늘리고 있다”며 “하지만 당장은 물량이 많지 않아 초소형 아파트가 더 귀한 몸이 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가장 큰 상승률 보이고 있는 청년 1인 가구를 위한 주거복지는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근 통계청이 발간한 통계플러스 조사에서도 2015년 기준 연령 20~34세 청년가구 중 11.3%에 해당하는 29만가구가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로 집계됐다.
최저주거기준은 가구원 수별 최소주거면적, 필수설비 등을 규정한 기준이다. 1인 가구의 경우 방 1개의 주거 면적이 14㎡을 충족해야 한다. 또한 입식부엌·수세식 화장실·전용 목욕시설 등 필수설비가 갖춰져 있어야 한다.
이 같은 청년가구의 최저주거기준 미달은 전체가구 미달률 8.2%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주거빈곤 상태에 있는 청년가구가 총 45만가구(17.6%)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체 주거빈곤율 12%보다 높은 수치로, 청년가구의 주거빈곤이 심각함을 알 수 있다. 또 청년가구는 전체 가구의 주거빈곤율 감소에도 홀로 증가세를 보여 주거환경이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개발원 김경용 통계분석실장은 “지난 20년간 주택의 절대 부족 문제는 대부분 해결됐으며, 주거환경이 양호한 아파트와 신규 주택의 공급을 통해 주거빈곤 가구 비율은 급격하게 감소했다”면서도 “청년가구에서만 주거빈곤 가구 비율이 증가하는 역주행을 보였다”고 말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청년가구는 다른 세대와 뚜렷하게 구별될 정도로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 지하·옥탑방 거주 비율이 높았다”며 “주거빈곤 가구의 감소를 위한 맞춤형 주거복지 정책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