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케어로 신음하는 병원들

문재인 케어로 신음하는 병원들

기사승인 2018-08-10 08:49:26

일명 문재인 케어로 불리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의 일환으로 지난 3월 선택진료비가 폐지되고, 4월에는 상복부 초음파 급여화가 7월에는 2~3인실 상급병실료 급여화가 이뤄졌다. 오는 9월에는 뇌·혈관 MRI 급여화가 예정돼있다.

이처럼 건강보험 혜택이 본격적으로 확대됨에 따라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는 환자들의 부담은 분명히 줄었다. 문제는 중소병원을 포함한 의료서비스 공급체계의 허리인 2차 의료기관들이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병원협회(회장 임영진, 이하 병협)8일부터 10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한 국제병원의료산업 박람회(KHF, Korea Hospital Fair 2018)’ 둘째날 대한중소병원협회와 메디칼타임즈가 공동으로 주최한 정책토론회에서는 중소병원들의 정부를 향한 성토가 줄을 이었다.

문재인 케어의 정책효과가 제대로 분석되진 못했지만 벌써 다양한 조짐들이 보이며 현장에서 부정적 변화가 피부로 느껴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환자는 상급종합병원 등으로 발을 돌리고, 비급여 축소에 대한 보상은 없는데다 각종 정책에서도 제외되고 있어 고사위기라는 것.

실제 각종 지표가 300병상 이하 중소병원으로 환자들이 점점 가지 않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환자들의 내원일수에서 상급종합병원만 2015년부터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반면 중소병원은 증가폭이 미미하다.

병상이용률은 상급종병이 100%를 넘어서고, 종합병원이 90% 이상을 유지할 동안 100병상 이하의 중소병원은 60%대 초반, 100병상 이상 중소병원은 75% 내외를 기록하고 있으며 그 수조차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며 병상의 다수가 놀고 있는 상황이다.

경영지표 상 자기자본비율은 20~30% 가량으로 자본의존도가 높고, 의료수익은 160병상 미만 병원의 경우 여타 기관이 증가세를 보이는 와중에도 2010년부터 2015년까지 매년 5.7~1.7%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직원들의 인건비와 부대비용은 늘지만 수익은 줄어 발생한 문제다.

이와 관련 양문술 중병협 정책부위원장은 문을 닫는 중소병원이 해마다 7%에 달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정부지원이나 정책, 제도가 중소병원과 동떨어지거나 소외시키고 있다보장성 강화정책에서 중소병원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의원의 수가가 병원이나 종합병원을 넘어서는 역전현상이 발생하고, 환자는 점차 큰 병원으로 발길을 돌리는데 인건비와 의사 임금은 상급종합병원의 2배가 넘었다면서 병원과 의사들만의 노력으로 개선하고 살아남기가 불가능한 것 같다. 지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현실은 더욱 처참한 듯했다. 한 중소병원장은 아직 본격적인 정책효과가 나타나지도 않았지만 선택진료 폐지 후 환자쏠림현상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상급종합병원이 하루에 1만명의 환자를 보는 동안 중소병원은 엉망이 됐다고 한탄했다.


서인석 중병협 보험이사는 환자 쏠림을 막기 위해 유일하고 약하게 작용해온 가격장벽이 문재인 케어로 더 낮춰졌다. 심지어 한정된 재원을 의료기관 끼리 나누는 경쟁이 과도해지며 높은 임대료와 시설, 설비 등에 대한 자본투자가 과해지며 악순환이 반복 된다고 말했다.

이어 가야할 방향(보장성 강화)은 옳고 부정하기 어렵지만, 현실적으로 다음달 직원 월급을 줄 수 있을지, 추가 대출금을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 고민해야하는 입장에서는 가야할 방향을 부정하고 싶어진다며 의료서비스 효율과 정책성공을 위해서라도 중소병원이 과도한 경쟁에서 벗어나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상급종합병원도 어려운 사정은 마찬가지다. 환자들을 몰리지만 각종 보장성 강화정책으로 인해 관행수가보다 낮은 비용으로 진료가 이뤄지다보니 환자를 볼수록 적자가 쌓이는 문제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상복부 초음파 급여화 이후 관행수가의 3분의 1 가격으로 보험수가가 책정된 반면 이에 대한 적절한 보상체계는 작동하지 않고 있어 적자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MRI 급여화 등 보장성 강화가 이뤄질수록 적자는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여기에 환자가 몰리며 응급환자, 중증환자 등 상급종병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하거나 지연되는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시급한 수술과 검사도 환자가 쏠리며 늦어지기 일쑤고, 당장 입원치료가 필요한 환자도 병실이 없어 수일을 모텔방에서 통원하는 경우도 벌어진다. 진료나 수술예약은 수개월 이상 밀리는 일이 다반사다.

병원 vs 정부, 심각성 온도차당장 내일 폐업? 왜 살려야하는데

하지만 절박함을 호소하는 병원들과 달리 정치권이나 정부, 환자들은 다소 느긋한 모습을 보였다. 벼랑 끝에 몰려 당장 내일을 걱정해야한다는데 중소병원을 왜 살려야하는지, 어떻게 살려야할지 고민하고 검토하자는 식이다.

조원준 더불어민주당 보건의료전문위원은 병원의 위기 많이 들어 알고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국민 입장에서 중소병원을 왜 살려야하는지, 중소병원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는 냉정한 진단과 고민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심지어 그는 문재인 케어의 대전제는 전달체계(의료서비스 공급체계) 개편이었지만 속된말로 의료계가 걷어찬 것 아니냐면서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지만 한 쪽에서는 자유로운 경쟁을 저해한다며 반발한다. 의료계 내부에서 의견조율이 선행돼야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병원입장에서는 살려달라고 호소할 것이 아니라 보건의료체계에서 중소병원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며, 어떤 강점이 있는지를 국민들이나 정부가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도록 설득하고 명확히 인식시켜야한다는 주장이다.

나아가 독재자처럼 정부나 정치권이 의사결정을 하고 추진할 수 있는 시대가 지난 시점에서 의료계 내부에서조차 정확한 진단을 내리지 못하고, 정책방향이나 보건의료체계의 나아갈 길에 대해 의견조율이 안 돼 갈피를 잡지 못한다면 정부와 정치권은 어느 입장에서 맞춰야하느냐는 것이다.

김윤 서울대의과대학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도 진단이 정확해야 치료가 가능하다. 듣기 거북한 이야기도 있겠지만 불편한 진실에서 시작해야 해법에 도달할 수 있다. 듣기 좋은 말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뜻을 전했다.

이어 전달체계 개편이 없는 보장성 강화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다. 하지만 전달체계 개편이 합의직전에 깨졌다. 지금도 의협에서 TF를 만들어 논의한다는데 만약 병협이 반대입장을 가지고 있다면 학자만 총알받이로 내세우지 말고 정부나 학계와 손잡고 강하게 나갈 수 있느냐면서 절박함을 담은 말과 함께 행동과 결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부 대표로 나선 보건복지부 정윤순 보건의료정책과장은 전달체계 개편을 위한 3가지 방향성으로 종별 기능분류 및 강화 기관간 협력체계 구축 지역거점병원 등 지역사회 중심체계 형성을 제시하며 협의과정에서 공감대가 형성된 부분부터 만들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심증진찰료 시범사업, 진료의뢰-회송 시범사업, 전문병원과 같은 중소병원의 서비스 모델 개발, 지역간 불균형 및 의료서비스 격차해소를 위한 거점병원 지정·육성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검토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지금은 어려운 의료기관간 합병 및 퇴출구조도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환자쏠림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상급종합병원에서 외래로 경증질환 진료를 받을 경우 처방받은 약제비 본인부담금을 높이는 차등제와 같은 방식의 전달체계 강화와 상급 병원으로 이동하는 것을 막아주는 진입장벽을 세우겠다는 계획도 공개했다.


이와 관련 또 다른 중소병원장은 중소병원이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 정립하고 설득하라는 말인 것 같다그런데 어찌 하라는 말이냐지금도 병원들은 오늘 내일 하며 어떻게든 살겠다고 속은 터지지만 환자를 보고 이리저리 뛴다면서 살 길을 열어주고 고민을 할 수 있는 여유를 줘야할 것이라고 정부와 정치권의 방관자적 태도를 비난하기도 했다.

한편, 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조금 다른 시각을 보였다.

그는 실손의료보험으로 인해 비용이 장벽으로 작용하기는 어렵다. 환자들도 의사들이 기본적으로 일정수준 이상의 실력이 있다고 보고, 고가의 장비나 시설을 보고 병원을 가기 보다는 인간적이고 설명 잘해주는 의사를 원한다며 전문성과 경쟁력, 서비스 정신을 갖출 때 부활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상급종합병원과 비교해 진료수준이나 결과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 편리한 접근성, 저렴한 비용 등을 내세우고, 환자가 바라는 친절한 서비스와 상세한 설명을 제공한다면 환자이탈을 막고 돌아오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제안이다. 그리고 정부와 정치권을 향해 일련의 상황을 만들 수 있는 제도적,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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