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은씨 ‘그루밍’ 상태” 전문가 의견 배제한 재판부…거센 후폭풍

“김지은씨 ‘그루밍’ 상태” 전문가 의견 배제한 재판부…거센 후폭풍

기사승인 2018-08-20 11:16:34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재판부가 김지은씨가 이른바 ‘그루밍’ 상태였다는 전문가 의견을 배제해 반발이 거세다.

그루밍(Grooming∙길들이기)은 성범죄자가 피해자의 호감을 얻거나 돈독한 관계를 만들어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성폭력을 가하는 것을 말한다.

19일 안 전 지사에 대한 판결문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 조병구)는 김씨 심리 상태에 대해 심리전문위원과 반대되는 결론을 내렸다. 1심 재판부는 6차 공판에서 심리 전문위원 2명을 불러 의견을 청취했다.

전문심리위원들은 안 전 지사가 김씨에게 능력을 넘어서는 보직을 준 점, 가벼운 신체 접촉부터 점차 강도 높은 성폭력으로 이행된 점, 보상을 제공한 점, 피해자를 특별히 대접한 점 등을 근거로 김씨가 그루밍 심리상태에 빠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안 전 지사가 성실성 등에 대한 호평과 추천에 따라 김씨를 수행비서로 발탁했고 첫 간음행위 이전에 안 전 지사가 김씨에게 특별한 관심, 칭찬, 선물 등을 보내거나 대접한 정황도 없었고 봤다. 또 그루밍 대상은 주로 아동, 청소년이기 때문에 전문직으로 활동하는 성인 여성이 한 달 사이 그루밍에 이를 수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안 전 지사가 담배 심부름을 시켰을 때 김씨가 방문 앞에 두고 갔다면 간음에 이르지 않을 수 있었는데, 김씨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성폭행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한 셈이다.

김씨는 즉각 반발했다. 그는 입장문을 통해 “왜 어렵게 진실을 말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안 들으시나”라며 “왜 제 답변은 안 듣고 답하지 않은 가해자의 말은 귀담아듣나. 그동안 성실히 악착같이 수사 받고 재판을 받았다. 무수히 많은 질문에 다 대답했다. 제게 무슨 질문을 또 하시려 하나”라고 말했다.

판결에 분노한 여성단체들과 시민들은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 못 살겠다 박살 내자’ 집회를 열었다. 집회 참가자들은 “성범죄자 비호하는 사법부도 공범이다” “안희정이 무죄라면 사법부가 유죄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여성단체는 오는 11월까지 규탄 집회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남성들에 대해서는 미묘한 심리상태 하나하나까지 찾아내 분석과 배려를 해주는 법원이 왜 눈에 뻔히 보이는 여성들의 불안이나 두려움에 대해서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가”라고 비판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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