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권과 함께 보건의료의 영리화를 반대해왔던 진보시민사회단체가 최근 정부에서 발표한 핵심규제개혁과제를 두고 강한 배신감을 표출하고 있다.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을 파기했다”, “문재인 정부가 시민들에게 사기를 치고 있다”는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라는 이름으로 뭉친 이들 단체는 정의당 윤소하 의원과 27일 ‘문재인 정부의 보건의료 혁신성장론,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간담회를 갖고 정책의 문제점을 낱낱이 파헤치며 신랄하게 비난했다.
앞서 정부는 바이오-메디컬 산업육성을 위한 연구의사 양성 및 병원 혁신전략을 확정했다고 지난 18일 발표한데 이어 혁신성장 확산을 위한 의료기기분야 규제혁신 및 산업육성 방안을 19일 발표했다.
여기에는 산업체와 병원이 연구개발 및 산업화를 위한 협력단을 구성하고, 기술지주회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이 담겼다. 의료기기의 안전성과 효과성평가를 사후평가로 전환하는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 도입과 체외진단검사분야 신의료기술의 시장진입에 소요되는 시간도 390일에서 80일로 대폭 단축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에 진보시민사회단체를 비롯해 보건의료전문가들은 ▶시장 진입 후 평가의 허술함과 그로 인한 국민의 재정적·물리적 피해 ▶건강증진형 보험상품과의 연계로 인한 민간자본의 의료업 허용 ▶산-병 협력으로 인한 의료기관의 영리추구 ▶자본에 의한 의료윤리의 상실 등 정부정책의 문제점을 하나씩 꼬집으며 강하게 비판했다.
실제 정형준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사향산업인 체외진단분야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별도의 법안을 마련하고, 현재 존재하지 않으며 제대로 이뤄질지도 미지수인 사후평가 도입을 전제로 국민의 주머니와 건강보험재정을 관련 기업에게 퍼주는 셈이라고 평가했다.
김준현 건강세상네트워크 공동대표는 의료기술의 혁신과 첨단은 임상적 유효성이 얼마나 개선됐는지를 판단해야하는 만큼 치료결과와 연계돼 객관적으로 실증돼야함에도 건강보험 의사결정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일체의 보고나 검토 없이 산업계를 중심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진 점을 지적했다.
나아가 문재인 케어로 불리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과 연계해 혁신·첨단의료기술이 비용효과성을 검증하는 전통적 방식을 우회해 환자에게 필수적인 의료기술이 아님에도 제공되며 부담증가만 유발할 수 있으며, 사용량 통제나 사후평가를 통한 퇴출이 어려운 점도 문제로 꼽으며 건강보험 재정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이들만이 아니다. 최규진 인하대의과대학 교수는 “세계적 흐름과 역행하는 정책”이라고 비판했고, 여타 전문가들 또한 유사한 우려를 포하며 “박근혜 정부가 2014년 추진해 의료민영화 논란을 일으켰던 확장판이다. 시민사회단체와 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조차 반대해왔던 정책을 계승하고 있다”는 등의 비난을 쏟아냈다.
산-병 협력단을 구성하는 것과 관련해서도 의료기관이 기업의 자본을 유치하고 자본의 요구대로 연구를 수행하며 국민의 쌈짓돈으로 환자를 임상시험의 도구로 활용하고, 기업의 입맛에 맞는 결과를 양산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해 이를 추진하는 정부가 문재인 정부인지 의심스럽다는 평가까지 내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정부를 대신해 자리한 보건복지부 임숙영 보건산업정책과장은 보건의료분야의 연구개발 활성화의 필요성, 산업발전의 당위성, 의료기관의 연구결과에 대한 성과가 재투자로 이어지지 못하는 비정상적 순환구조를 주장하며 영리화가 아니라고 못 박았다.
아울러 “인간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규제완화는 해선 안 된다는 정부입장은 그대로다. 다만 규제완화와 관련해 현장에서 많은 논의들이 나눴고, 환자 편의와 치료에 필요한 부분은 규제를 완화할 필요성이 인정되는 부분도 있었다”면서 관점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우려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차원에서 규제를 개선해나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신준수 의료기기정책과장 또한 국민생명을 최우선으로 정책방향을 두고 있으며 많은 부분에서 규제강화도 이뤄지고 있으며, 체외진단기기 별도법안 또한 의약품과 의료기기의 중간영역에서 별도법안을 통해 안전성을 강화하는 측면에서 필요하다는 점을 이유로 들며 규제합리화 차원에서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한편, 이들의 설명은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이들의 공감을 얻지는 못한 모습이었다. 좌장으로 참석한 신영전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창조경제와 혁신성장의 다른 점은 이름 밖에 없는 것 같다. 복지부에서조차 답변을 하지 못하는 모습”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심지어 복지부 과장의 악수요청조차 받지 않았다.
김진경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장은 서울대병원 내 영리자회사인 ‘헬스커넥트’의 환자정보유출 문제, 보라매병원의 로봇수술도구 도입과 수익확보를 위한 의료진 독려로 인해 발생하는 환자피해 등을 거론하며 “문재인 정부가 국민 건강을 팔아먹는 사기꾼”이라고 힐난하기도 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