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여 개의 산성과 읍성을 쌓았던 ‘성곽의 나라’ 대한민국-
“읍성은 도심에서 우리와 함께 호흡하며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매개체다. 읍성의 형태가 비교적 잘 남아있는 언양읍성이 정확한 고증에 의해 복원되어서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길 희망한다.”면서 “500~60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읍성은 훌륭한 문화관광 자원이다.” 빗방울이 흩날리던 지난 23일 언양읍성을 안내한 울주군 신학순 문화해설사는 말했다.
태풍 ‘솔릭’이 한반도를 잔뜩 긴장시켰던 지난 22일부터 24일까지 비바람을 운 좋게 피해가면서 아직까지 읍성의 형태가 많이 남아있거나 복원 중인 한국의 대표적 읍성(邑城, town walls, city walls)을 돌아보았다
-선조들의 삶과 문화가 녹아있는 읍성-
읍성(邑城)이란 마을이나 도시의 방위와 치안, 행정을 위해 고을을 둘러 싼 성곽(城郭)을 말한다. 전투를 목적으로 축조한 산성과 달리 생활공간이었던 읍성에는 우리 조상들의 삶과 문화와 지혜가 녹아있다.
읍성은 기본적으로는 산을 배경으로 남쪽으로 평탄한 곳을 골라 성을 쌓았다. 읍성 안에는 동헌과 내아, 객사 등 기본적인 관아 외에 사직단, 향교, 향청, 창고, 옥 등의 건물을 지었다.
고려시대에는 주요 지방도시에 읍성이 되었고, 고려 말기까지는 규모가 작은 토축(土築)의 읍성들이 상당수 존재하였다. 이들 고려시대의 읍성들은 조선왕조로 이어지면서 숫자가 크게 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 의하면 조선 성종 때, 전국 330개의 행정구역 중 190개가 읍성이 있었고 그 중 179개소가 석축성이다. 특히 왜구의 침략이 빈번했던 조선 초기에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해안지방을 중심으로 많은 읍성이 축성되었다.
새로 축조되거나 개축된 읍성은 성의 방어력을 높이기 위하여 성벽의 높이를 높이고 옹성(甕城 : 문의 양쪽에 쌓아 문을 공격하는 적을 방비하는 것)과 치성(雉城 : 성벽의 바깥에 네모꼴로 튀어나오게 벽을 쌓아 성벽에 바싹 다가선 적병을 비스듬한 각도에서 공격하게 하는 시설)·해자(垓字 : 성벽의 둘레에 도랑을 판 것)를 시설하고 중앙정부에서 관리했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는 “읍성에는 우리 조상들의 애환과 문화와 예술, 행정, 민중들의 삶이 담겨져 있다. 읍성은 하나의 건축물이라기보다 우리 조상들이 오랫동안 살았던 삶과 문화의 공간이며, 지방마다의 고유한 문화가 발달한 곳”이라고 말했다.
-일제 강점기 때 대부분 파괴-
이렇듯 선조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읍성들은 조선왕조의 마지막까지 존속되었으나, 1910년 일제강점 이후 일본에 의하여 읍성철거령이 내려지면서 대부분의 읍성들이 헐렸다.
일제는 조선왕조와의 단절을 도모하고 ‘시가지 계획’에 따라 지방도시의 시가지를 개조하고 규제를 하였다. 특히 읍성의 성벽이 철거되면서 간선도로가 신설되고 전차선로가 부설되었다. 읍성은 이러한 과정 등을 거치며 급격히 훼손되었다.
이와 함께 6.25 전란을 거치면서 도시가 파괴되고 이후 무분별한 도시건설과 산업화로 인해 대부분의 읍성자리에는 건물이 들어서면서 읍성은 점차 자신의 자리를 잃어갔다.
더욱이 읍성은 대부분이 도시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고, 사유지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읍성을 온전한 형태를 복원하기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대도시의 경우 읍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성문 복원에 중점을 두고 있다.
반면 중소도시의 경우 성곽이나 읍성의 유구가 많이 남아 있고, 축조 당시의 자연환경이 크게 달라지지 않고 훼손도 심하지 않아 원형으로의 복원 중이거나 복원을 계획하고 있다.
-문화재 복원과 사유재산 침해 속, 공존 방법 찾아야-
현존하는 읍성으로는 정조 때 축조된 수원의 화성(華城)이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고 동래읍성·해미읍성·비인읍성·남포읍성·홍성읍성(홍주성)·보령읍성·남포읍성·남원읍성·고창읍성(일명 모양성)·흥덕읍성·낙안읍성·진도읍성·남도석성·경주읍성·진주읍성(일명 촉석성)·언양읍성·거제읍성 등이 있다.
이들 중 전라도 순천의 낙안읍성이나 고창의 고창읍성과 서산의 해미읍성 제주의 무장읍성의 경우 도시화 및 산업화 과정에서 다소 떨어져 있었고 읍성의 형태도 크게 훼손되지 않아 오늘날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크게 간직하고 있다.
문화재청의 김철주 문화재전문위원은 “읍성은 선조들의 숨결이 살아있는 역사적 공간이다. 읍성이 중요한 문화재라는 인식과 도시개발의 걸림돌이라는 충돌 속에서 슬기롭게 공존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글=곽경근 기자 kkkwak7@kukinews.com 사진=곽경근 기자/ 왕보현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