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를 만나 다친 유대인을 구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에서 유래한 ‘착한 사마리아인 법’ 도입요구가 다시금 화두로 떠올랐다. 통상 법조계나 언론을 통해 제기되던 문제가 이번엔 의료계에서 촉발됐다. 하지만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한 도전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대한의사협회(회장 최대짐, 이하 의협)는 10일 한방에 대한 의료계의 원칙을 밝히는 기자회견에서 선의로 이뤄진 병원 밖 응급의료행위로 9억원대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휘말린 가정의학과 전문의 사례를 소개하며 향후 유사사건에 의사들이 개입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했다.
이어 선의에 근거한 응급의료행위일 경우 결과와 상관없이 책임을 면제해주는 일명 ‘착한 사마리아인 조항’을 포함한 응급의료법 개정이 이뤄질 때까지 무개입 원칙을 지켜나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 같은 결정배경에는 지난해 5월 한의원에서 봉침시술을 받던 중 알레르기 반응의 일종인 아낙필락시스 쇼크로 의식을 잃은 30대 초등학교 여교사의 응급처치를 위해 달려간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 위반’ 혐의로 송사에 휘말린 사건이 있다.
여교사의 유가족은 “가정의학과 의사가 응급상황에서 도착이 늦어 치료할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주장하며 “처음부터 현장에 오지 않았다면 몰라도 한의사를 도우러 왔다면 보증인적지위가 있으며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해야했다”는 논리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도 의협은 “살면 미담, 죽으면 처벌”이라며 응급상황에 개입했다가 결과만을 두고 처벌이 이뤄지는 사안들이 발생할 때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을 적용해야한다는 입장을 피력해왔다. 달라진 점은 과거엔 주장에 그쳤던 것이 이번엔 행동이 수반됐다는 것이다.
최대집 의협회장은 “현행 응급의료법상 의사들이 선의에서 응급의료행위를 하고도 중대한 과실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을 지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최선의 의료행위를 제공하기는 불가능하다. 앞으로 의료기관 내에서만 적법절차에 따라 응급의료를 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 보건의료계 관계자는 “방조가 만연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환자를 살리려는 의도에서 이뤄진 행동에도 부정적 결과가 나오면 처벌이 거론되는 상황은 정상적이진 않다. 의협의 요구도 이해는 간다”고 말했다.
다만, 의협의 무개입 선언을 두고는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정부와 해보자는 식”이라며 “아동학대 의심환자에 대한 신고의무화 개정안에는 지나친 규제라며 방관하겠다는 뜻을 담아 반대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평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