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의 벼랑 끝 정치가 통했다. 일명 ‘문재인 케어’를 논의하기 위해 서울 모 처에서 대면한 의료계와 정부의 면면엔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서로 맞잡은 두 손에는 상대를 향한 신뢰도 일부 엿보였다.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13일 오전, 의료계를 대표해 정부와 보건의료정책을 논의하고 있는 대한의사협회 대표단과 보건복지부 이기일 보건의료정책관을 필두로 정윤순 보건의료정책과장, 손영래 예비급여과장, 이중규 보험급여과장, 고형우 의료보장관리과장 등 10명은 5번째 의정협의에 나섰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주로 논의된 내용은 오는 10월 1일 시행을 앞두고 있는 뇌·뇌혈관 MRI 급여화와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대응, 수가 적정화를 위한 방안, 문재인 케어의 점진적 추진에 대한 사항들이었다.
먼저, MRI 급여화와 관련 의료계와 정부가 서로 이해하고 배려해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결과가 도출됐다고 참석자들은 자평했다. 특히 급여기준을 초과하는 영역에 대해 일률적으로 예비급여를 적용하려던 복지부가 필요에 따라 비급여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 보다 유연하고 현실성 있는 제도가 만들어졌다고 평가했다.
의정협의체 의협 협상단장을 맡고 있는 강대식 부산시의사회장은 “뇌·뇌혈관 MRI는 필수의료의 영역으로 국민에게 우선적으로 건강보험혜택이 필요하다는 대승적 판단 하에 논의가 이뤄졌고, 의료계의 원칙고수와 일부양보, 정부의 일부 양보와 배려로 진정성 있는 대화를 이어오며 오늘의 1차적 결실을 맺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협 못지않게 상호 신뢰와 진정성을 보여준 복지부 협상단, 첨예한 이해관계에도 의협을 믿고 뜻을 함께 해준 관련 전문학회에 감사함을 표한다”면서 “이번 사례가 의료계와 정부 간 신뢰를 바탕으로 논의하는 기반으로서 상호 협력적 의정 협의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는 뜻을 전했다.
이에 협의체 정부 측 대표인 이기일 보건의료정책관도 “의료계와 정부가 협력해 충분히 논의하고 공유할 수 있는 합리적 결과였다”며 “이번 기회로 특수하고 제한적인 보험제도 개선, 신경학적 검사나 뇌수술 수가 인상 등의 수가보상을 통해 국민과 의료계가 상생할 수 있게 됐다”고 화답했다.
아울러 “의료계와 정부가 신뢰를 쌓고 상생하며 발전하는 좋은 선례가 됐다”고 내심을 밝히며 “이를 바탕으로 (문재인 케어 또한) 함께 진정성을 갖고 진지하게 논의해 나가자”는 의지를 내보였다.
이와 관련 MRI 급여화 추진과정과 합의안 도출에 참여한 대한신경과학회, 대한영상의학회, 대한응급의학회 등 학회들은 “보다 유연하고 현실성 있는 제도를 운영하고자 하는 정책판단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이후 다른 항목의 급여전환 시에도 합리적으로 추진하길 바란다는 마음을 전달했다.
다만, 신뢰와 상생, 긍적적인 발전 등의 단어가 쓰이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가운데서도 좁혀지지 않은 간극이 존재하는 듯한 모습도 일부 드러났다. 특히 MRI 급여화에 따른 수가수준, 향후 도입될 급여항목들의 수가 및 급여범위, 의료수가 전반에 대한 적정화에 대한 의료계의 불만은 아직 가라앉지 않았다.
학회들은 “뇌·뇌혈관 MRI 급여수가 결정에 있어 기존 행위와 유사행위에 대한 상대가치점수의 균형, 보험재정 등을 고려해 일반 비급여 수가에 미치지 못하는 가격이 책정됐다”며 “우리나라의 적정 의료수가를 실현함에 있어 또 다른 왜곡현상을 누적시킨 결과임을 심각하게 인지하고 조속히 수가적정화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더불어 “제도 시행 후 일정기간 추이변화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심사개입 등 변수요인을 차단해 객관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분석하고, 진료왜곡 현상 등 가시적 이상변화를 보일 경우 즉각적인 보완대책을 수립해야한다. 또한 모니터링 기간 이후 급여범위나 세부기준의 조정을 의료계와 재논의해 보완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의협 또한 “금번 뇌·혈관 MRI 급여화 방안을 마련함에 있어 정부와 의사협회, 관련학회가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논의하는 시금석을 마련했다는 소중한 성과를 바탕으로 향후에도 이와 같은 협의기전이 지속되길 바란다”면서 “이후 수가정상화 협상이 우선적으로 다뤄져야한다는 것이 의협의 양보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못 박았다.
한편, 이번 협의로 정부와 의료계간 신뢰가 일부 쌓이고, 진정성 있는 대화가 이뤄졌음에도 관계가 급격히 나빠질 여지도 여전히 남아있음을 의협은 분명히 했다. 협의에 참석한 정성균 의협 기획이사 겸 대변인은 “MRI 급여화와 별개로 문재인 케어의 점진적, 단계적 추진에 대한 의협의 요구는 변함이 없다”며 “오는 9월 30일까지 정부의 답을 기다리고 있다”고 답했다.
앞서 의협은 지난달 14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케어가 급진적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의료계와 환자의 피해가 속출하고 건강보험 재정이 위협받고 있음을 주장하며 “더 큰 부작용이 발생하기 전 비급여의 급여화 정책을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변경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문재인 케어의 정책변경은 보건복지부를 넘어 청와대와 국회 차원의 결단이 요구되는 정치적 사안이기에 회의를 열어 최종합의안을 만들자”면서 오는 9월 30일까지 요구에 응답할 것을 촉구했다. 그리고 만약 답변이 없다면 의지가 없는 것으로 간주해 모든 종류의 논의를 중단하겠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