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지만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부처 간 엇박자는 좀체 사라지지 않는 모습이다. 금융당국이 지난 6월 26일 발표한 밴수수료 체계개편이 일명 ‘문재인 케어’로 불리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관측이 의료계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
앞서 금융위원회가 주도하고 관계부처가 상의해 발표한 이번 ‘밴수수료 체계개편’은 카드결제 시 승인 혹은 매입 업무를 처리하는 밴사에게 카드사가 지급하는 비용을 정률제로 변경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간 카드사는 밴수수료를 가맹점의 카드수수료율에 결제금액과 무관하게 결제건당 정액으로 청구해왔다. 이에 따라 소액결제가 많은 편의점이나 약국 등 소액결제업종이 백화점, 대형병원 등 고액결제업종에 비해 많은 수수료를 부담해야하는 상황이 왕왕 벌어져왔다.
금융당국은 이를 불합리하다고 봤다. 동일한 매출총액을 달성해도 결제 건수가 많아 수수료를 더 내야하기 때문이다. 이에 소액결제업종의 수수료부담을 낮추겠다며 카드사가 벤사에 지급하는 밴수수료 총액은 유지하며 정액에서 정률로 변경, 가맹점별로 적용하는 수수료 산정에 반영토록 했다.
이와 관련 금융위는 “밴수수료 정률제 적용에 따라 그동안 높은 수수료를 부담해왔던 소액결제업종의 수수료율이 인하되고, 낮은 수수료 혜택을 받은 거액결제업종의 수수료율이 상향돼 가맹점간 격차문제가 해소되는 효과가 기대된다”면서 개편후 평균 2% 수준으로 가맹점 간 수수료율 격차가 거의 동일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 밴수수료 체계개편의 여파에 경영압박 심화되는 의료기관
실제 밴수수료 체계개편에 따라 소액결제가 많은 가맹점의 수수료 부담은 일부 줄어드는 모습이다. 하지만 고액결제가 많은 가맹점의 부담이 늘었다. 특히 비영리법인으로 수익사업에 제한이 많은 의료기관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흔히 동네의원이라고 불리며 소액결제업종에 다수 해당하는 의원급 1차 의료기관이나 약국 중 영세·중소 가맹점 우대수수료율(0.8·1.3%)을 적용받지 못한 경우를 포함해 다수의 의료기관들의 카드수수료율이 정부 예상을 비웃든 큰 폭으로 높아져 부담이 늘었다는 것이다.
대한병원협회가 최근 보건복지부와 금융위원회에 제출한 카드수수료율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금번 밴수수료 체계개편에 따라 카드사들이 병원급 의료기관 이상에게 제시한 카드수수료율 평균은 상급종합병원 2.2%, 종합병원 2.24%, 요양병원 2.3%, 병원 2.29%다.
정부가 카드사들에게 정률제 전환으로 인한 급격한 수수료율 증가를 방지하고 낮아지는 밴수수료 단가 등을 감안해 제한한 수수료 상한이 2.3%인 점을 감안하면 거의 최대치다. 더구나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의 경우 2.07%와 2.15%였던 수수료율이 각각 0.13%p와 0.09%p 상승해 정부의 예상 폭인 0.08%p보다 높았다.
문제는 의료기관이 가지는 특수성에 있다. 의료기관은 기본적으로 비영리법인으로 의료행위와 장례식장 운영 등 일부 사업을 제외하면 별도의 수익사업이 허용되지 않는다. 게다가 대부분의 진료행위에 대한 비용이 보건복지부 고시에 따라 정해져있어 환경변화에 따른 가격조정이 비급여를 제외하고는 고시가 개정되기 전까진 거의 불가능하다.
심지어 진료비를 포함해 정부가 정하고 있는 수가의 원가반영률은 80%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정부 또한 인정하고 있으며 이를 최소한 100%에 육박하는 적정수준으로 올리겠다는 약속을 한 바 있다.
여기에 비교적 가격결정이 자유로운 비급여행위 또한 홈페이지 등에 가격이 공개되도록 규정하고 있어 폭리를 취하기가 어려운 구조다. 이에 병원협회는 비급여를 포함한 종합병원의 수익률을 1% 내외로 산출하고 있다.
결국 총 매출액 100억원이 모두 카드결제로 이뤄졌다면, 이 중 인건비나 치료재료 등의 원가비용을 제외한 1억원이 병원의 순이익인 상황에서 카드수수료로 2억2000만원이상의 비용을 지불해야하는 처지에 놓인 셈이다.
◇ 진료비 풍선효과 유발 우려에 무시하는 국회, ‘검토 중’이라는 금융위
병원협회의 예상대로라면 의료기관들의 적자운영은 기정사실화된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 일명 ‘문재인 케어’에 따라 수가 부족분을 채워 온 비급여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카드수수료율 인상은 의료기관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에 병원들은 생존을 위해 새로운 비급여 진료를 만들어 진료량을 늘리거나 꼭 필요하지 않는 검사를 하는 등 과잉진료와 같은 비정상적인 운영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 병원계 관계자는 “지금도 병원들, 특히 중소병원을 중심으로 경영상태가 최악이란 말이 매년 갱신되며 악화되고 있다. 최근엔 문재인 케어로 인한 부작용으로 병원들의 경영상황은 또 한 번 나락으로 떨어졌다”이라고 현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카드수수료까지 오른다면 다수의 병원이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며 “비영리법인은 파산 전까진 폐업도 힘들다. 벼랑 끝에서는 무슨 짓이든 하지 않겠느냐.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며 비급여를 늘리고 편법에 가까운 교묘한 형태의 과잉진료가 늘 것은 자명한 일”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의료계 관계자도 “진료량과 비급여가 늘어나 보장성이 강화됨에도 진료비가 증가하는 풍선효과가 카드수수료로 인해 유발되는 상황도 충분히 상정할 수 있다”며 “결과적으로 보건당국과 금융당국의 정책이 엇박자를 내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병원협회 또한 이 같은 상황을 우려해 보건복지부와 금융위원회로 수차례 건의문을 전달했다. 내용은 ▶여신금융업법 혹은 여신금융업법 감독규정 개정 ▶신용카드 수수료 산정체계 개편 ▶카드사의 부당한 카드수수료 인상관행 개선 ▶카드사 정례적 실태조사 및 처벌강화 등이다.
영세·중소가맹점에 건강보험법 상 요양기관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여신금융업법을 개정해 우대수수료율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하거나, 감독규정을 개정해 공공요금·대중교통 등 적격비용 차감 조정대상을 의료기관으로 확대하라는 주장이다.
더불어 총매출을 기준으로 수수료율을 요양기관에 적용하는 것은 여타 업종과의 형평성을 오히려 저해할 수 있는 만큼 순이익으로 수수료율 산정기준을 재편하거나 적어도 요양급여비용 매출액을 제외해야한다는 의견도 담겼다.
여기에 가맹점 수수료율의 차별금지 등을 담은 여신금융업법 18조3항에 의거해 공정하고 합리적인 가맹점 수수료율 산정과 가맹점별 차별을 막을 수 있는 산정체계를 수립하고, 감독규정 25조의4에 언급된 가맹점 수수료율이 객관적이고 공정타당하다고 인정되는 자료에 근거하는지를 감시하고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도 전했다.
특히 신용카드업자가 우월적 지위를 행사하며 협상력이 약한 의료기관들에게 수수료율 인상을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카드사들의 운용손실 등을 떠넘기듯 전가하는 방식을 지적하며, 정책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한 정례적 실태조사와 처벌규정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이와 관련 복지부 또한 병원협회 등 의료계의 주장에 일부 긍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 정은영 과장은 비영리법인의 특성상 수익사업을 별도로 하지 못해 비급여진료나 과잉진료를 조장할 여지가 있다는 지적에 “가능성이 있다”며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어 “병원협회가 실시한 실태조사를 봤을 때 금융위가 예상해 발표한 0.08%p 인상보다 높았다. 이에 의료기관의 특성과 카드사들의 카드수수료율 인상요구의 문제점을 검토해줄 것을 이미 요청했다. 하지만 아직 별다른 답변을 듣지는 못해 한 번 찾아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반면 정부여당과 금융위는 복지부와는 다른 입장을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근본적으로 대형이라 불리는 의료기관들의 매출이 수백억원 이상으로 많고, 당초 계획한 소상공인 수수료부담완화와는 정책목표가 달라 정책방향을 수정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더구나 과잉진료나 신규 비급여 행위의 증가는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여당 관계자는 “대형병원은 그만큼 돈을 많이 벌지 않느냐”면서 “비영리단체로 따로 빼야한다는 의견은 그쪽 논리가 있어야 한다. 더구나 문재인 케어를 통해 비급여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으며 청구심사 과정에서 과잉진료는 걸러질 것”이라며 우려에 그칠 것이라고 답했다.
금융위도 “대형병원과 대형마트 등의 수수료가 크게 다를 수 없다”며 “모든 병원이 오른 것은 아니다. 일부는 오르고 일부는 내렸다. 의료계만 볼 수도 없다. 합리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타 업종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검토하고 있다. 연말에는 결과를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