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의 기다림’ 대법원 “日 기업,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1억 배상”

‘13년의 기다림’ 대법원 “日 기업,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1억 배상”

기사승인 2018-10-30 21:03:47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일본 기업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30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이춘식(94)씨 등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4명이 일본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재상고심에서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원을 배상하라”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신일본제철의 상고는 모두 기각됐다.  

재판부는 이날 ‘신일본제철은 강제동원 피해를 배상하지 않아도 된다’는 일본 측의 판결이 우리 법원에 효력을 미치지 않는다고 봤다. 또한 강제동원 피해자의 위자료 청구권은 지난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날 이씨는 휠체어에 앉은 모습으로 대법원을 찾았다. 재판에 앞서 기자들과 만난 이씨는 “한이 맺혀 눈물이 난다”며 “처음에는 4명이 함께였는데 이제는 나 혼자라 슬프다”고 울먹였다. 이날 이씨와 시민사회단체 등은 서초구 서초역 6번 출구에서부터 대법원 동문까지 ‘신일철주금은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보상하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했다. 재판 결과를 보지 못하고 사망한 강제동원 피해자의 영정을 든 유가족 등도 이날 행진에 함께 했다.

대법원 선고 후, 이씨는 “너무 기쁘면서도 슬프다. 눈물이 많이 나온다”며 “다른 사람들이 다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혼자 판결을 듣게 돼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소감을 전했다. 함께 소송을 진행했던 고(故) 김규수 씨의 부인은 “돌아가시기 전에 판결이 나왔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고 이야기했다.

이번 소송은 지난 2003년 10월 일본 최고재판소의 판결에서 출발했다. 최고재판소는 고(故) 여운택씨와 고(故) 신천수씨가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구 일본제철의 채무를 신일본제철이 승계했다고 볼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고 여씨와 고 신씨는 지난 1941~43년 신일본제철의 전신인 구 일본제철에서 강제노역한 강제동원 피해자였다. 

고 여씨와 고 신씨는 지난 2005년 대한민국 법원에 다시 소송을 제기했다. 구 일본제철에서 강제노역했던 또 다른 피해자 이씨와 고 김씨도 소송에 합류했다. 1심과 2심 모두 “일본의 확정 판결은 우리나라에서도 인정된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대법원은 지난 2012년 5월 “일본 법원의 판결 이유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라며 재판을 서울고등법원(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서울고법은 지난 2013년 7월 “일본의 핵심 군수업체였던 구 일본제철은 일본 정부와 함께 침략 전쟁을 위해 인력을 동원하는 등 반인도적인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면서 원고들에게 각각 1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다시 공은 대법원으로 돌아갔으나 답변은 나오지 않았다. 이후 5년 동안 이씨를 제외한 피해자 3명이 모두 세상을 떠났다.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시민사회단체는 대법원에 최종 확정 판결을 내려줄 것을 촉구했다.  

‘사법농단’ 의혹이 불거지며 강제동원 판결에 다시 이목이 쏠렸다. 양승태 사법부에서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공모, 일본과의 마찰 소지가 있는 재판을 고의로 지연하고 소송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이후 대법원은 지난 7월 해당 사건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 판결의 속도를 높였다.

일각에서는 이번 소송 판결과 관련, 일본과의 외교적 마찰을 우려했다. 일본 정부는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는 방안을 비롯한 강경 대응을 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일 외교관계에 긴장이 심화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 사진=박효상 기자 tina@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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