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바라는 환자 vs ‘소송’ 하라는 의사

‘사과’ 바라는 환자 vs ‘소송’ 하라는 의사

기사승인 2018-11-07 15:21:54

8세 아동를 변비로 오진해 사망에 이르게 한 의사 3인에 대한 법정구속 판결이 내려진 후 의료사고를 바라보는 의사와 환자의 극명한 시각차가 드러났다.

환자들은 의료사고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애도, 예방을 위한 대책, 적정한 피해보상을 바랬다. 반면 의사는 최선의 진료를 다 했음에도 발생한 사고에 대해 형사적 책임을 물을 수는 없으며, 소송이나 분쟁조정을 통해 시비를 가려야한다고 맞섰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대표 안기종)와 의료사고 피해자 유가족은 7일 오전 대한의사협회 임시회관 앞에서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진료거부권과 형사처벌특례법을 주장하는 의사들을 규탄했다. 이어 이를 주도하는 의사협회가 의사면허를 살인면허, 특권면허로 만들려한다고 주장했다.

환자가 의사의 오진이나 과실로 인해 사망하는 등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는 신이 아니다. 모든 의사는 실수를 할 수 있다’며 형사적 처벌을 받지 않고, 오히려 환자를 선별해 진료를 거부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법을 무시하고 의사에게 특권을 주라는 비상식적인 요구라는 설명이다.

백혈병을 앓아 항암치료를 하며 완치판정을 4개월여 앞둔 상황에서 응급장치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주사실에서 골수검사를 위한 수면제를 투약 받은 후 사망한 故김재윤 군의 어머니는 “신이 돼 모든 사람을 치료하라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절차나 지켜야할 것을 지키라는 것”이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어 “병원 의료진은 ‘억울하면 법대로 하라’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지낸다. 하지만 소송을 한도고 해도 의료진의 과실을 입증하기란 유가족에게 너무나 힘든 일”이라며 “지금이라도 과실을 인정하고 사과를 한다면 아이를 떠나보낸 상실감과 슬픔이 조금이라도 위로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호소했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의사협회가 환자를 선별하고 의사에게 형사처벌을 면제하라는 주장을 할 것이 아니라 환자와 의사 간의 소통을 강화하고 신뢰를 높이며 신속한 피해보상이 이뤄지는 환경을 만드는 것에 더 큰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할 것”이라며 “국민과 환자로부터 외면 받는 것이 아니라 존경받을 수 있길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의사의 안위와 이익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의사의 실수로 환자가 상해를 입거나 사망한 경우에도 충분한 설명과 사과·유감·공감 등의 애도를 표시하기는커녕 적절한 피해보상과 유사사건 예방을 위한 대책마련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현실을 개선해나가는 노력을 기울여야한다는 요구다.

하지만 의사들의 대표단체인 대한의사협회는 다른 입장을 보였다. 당장 최대집 의협회장은 ‘살인면허’라는 단어에 대해 “의사면허가 살인면허냐”면서 격분했고, 진심어린 사과를 촉구했다. 나아가 명예훼손 등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어 “의사의 희생과 헌신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것이 현 의료제도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의사에게 의료과실에 따른 법정구속이라는 더 큰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며 “의사협회 또한 의사의 업무상 과실을 최소화 할 수 있는 환경으로 개선하고자 끊임없이 요구해왔고 더 이상의 희생을 거부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비판적 의견에 대해서는 언제든 경청하고 반영할 의지가 있다. 대화와 토론도 환영한다. 하지만 의사면허가 살인면허라는 식의 악의적 표현은 합리적 논의진행을 막고 싸우자는 것 밖에 안 된다”면서 “최선의 진료결과를 내기 위한 협력관계인 환자와 의사가 함께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의료과실에 대한 인식은 달랐다. 최 회장은 “의료과실은 분명히 발생할 수 있다. 의료계가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과실의 유무나 경중을 판단하기 위해 의료분쟁조정법과 민사소송 등이 있는 것”이라며 “이를 통해 상응하는 책임을 지고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형사처벌특례법에 대해서도 “고의성을 갖고 환자에게 피해를 입혔다면 형사처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결과만으로 형사처벌을 한다면 진료를 할 수 없다”며 “이미 수술을 하는 외과계는 상당히 위축돼 있다. 의사의 심리적 위축만으로도 부작용 가능성이 높아진다. 10~20%지만 생명을 살릴 기회조차 박탈당할 것이다. 환자의 생명권, 건강권과 직결된 문제”라고 꼬집었다.

진료거부권 주장에 대해서도 “의사에게 폭행을 가하고, 욕설과 협박을 가하는 환자, 의사의 진료행위를 고의로 방해하거나 협조하지 않는 환자를 의사는 끝까지 설득하고 다독이며 진료를 해야하냐”며 “환자를 의사 임의대로 거부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거부할 조건을 규정해 그 범위 안에서 진료선택권이 제공돼야한다는 의미”라고 당위성을 주장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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