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관에서 전문의가 되기 위해 수련을 쌓으며 하루하루 환자를 돌보는 시간조차 부족한 전공의들이 보건복지부를 향해 날을 세웠다. 한의사들의 현대의료기기 사용과 보험등재를 검토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에 분노를 표출한 것.
전공의들의 모임인 대한전공의협의회(회장 이승우, 이하 대전협)는 9일 “한의사의 의과 의료기기 사용과 보험 등재를 검토 중이라는 보건복지부의 공식 입장을 가장 강력한 목소리로 규탄한다”면서 박능후 장관의 대국민 사과와 한의약정책관의 파면을 촉구했다.
대전협은 “한의사들은 오래전부터 엑스레이와 초음파를 비롯한 첨단 의료장비와 현대의약품을 사용하겠다며 그들이 주장하는 전문성의 위상을 스스로 절하하는 고집을 부려왔다”면서 금번 안압측정기, 자동안굴절검사기, 세극등현미경, 자동시야측정장비, 청력검사기 사용 및 보험등재 요구에 대해 “구식의 반복일 뿐이며 굳이 논평할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다만, “의학과 한방의 차이에 대한 명확한 개념 정립하고 국민건강과 지역사회 의료안보를 위해 무엇이 최선일지를 판단할 의무가 있는 복지부가 되레 한의사집단에 동조해 그들의 의료기기 사용을 보험등재 하겠다는 것은 현재뿐 아니라 미래의 국민건강을 담보로 한 망국적 포퓰리즘의 발로”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기술은 기술이 탄생하기 위한 지식 안에서 생명을 부여받고 세상을 보다 발전할 수 있도록 힘을 발휘하는데, 현대의학에 기초한 의료기기를 음양오행으로 질병을 치료한다는 등의 한의학적 지식 아래 사용하겠다는 것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학기술 어디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나아가 젊은 의사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두고있는 의학에서 출발한 기술이 위험한 착각 안에서 그 빛을 잃고 종국에는 그들이 ‘해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며 마음 속에 세운 원칙을 부수는 단계에 이르는 상황에 분노를 감출 수 없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대전협은 “의학과 한방을 구분하지 못한 채 복지의 늪에 빠져 국민건강을 담보로 위험한 줄타기를 일삼는 박능후 장관은 국민 앞에 사죄하고, 의료의 근간을 침범하는 황당한 정책을 양산하는 한의약정책관을 즉각 파면하라”고 촉구하며 “언제나 환자 앞에 겸허할 수밖에 없는 1만5000여 전공의들의 양심에 대한 도전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앞서 보건복지부는 국정감사 서면답변에서 “헌법재판소가 한의사 사용가능 의료기기로 판시한 안압측정기, 자동안굴절검사기, 세극등현미경, 자동시야측정장비, 청력검사기 등 5종의 의료기기에 대해 한의사가 사용 시 건강보험 적용하는 것을 검토할 것”이라고 뜻을 전했다.
실제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3년 12월 안압측정기 등 논란이 된 5개 의료기기에 대해 “자격있는 의료인인 한의사에게 과학기술의 산물인 의료기기의 사용권한을 부여해야한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에 대해 대한의사협회는 복지부의 답변이 알려진 직후 긴급 집회를 열고 “비전문가에 의해 사용될 경우 국민의 건강권에 대한 질적 보장은 장담할 수 없다. 그럼에도 비전문가인 한의사의 의과의료기기 사용을 넘어 건강보험 편입까지 검토하겠다는 복지부 행태에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마저 느낀다”고 일장을 밝혔다.
이어 “당시 헌재는 해당 사건을 심리하며 대한의사협회나 대한안과학회, 대한안과의사회 등 전문가단체의 의견수렴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아 소송에 있어 가장 우선적으로 판단해야 할 비전문가에 의한 무분별한 의료기기 상ㅇ이 가져올 위해성 여부에 대한 판단을 전혀 하지 않았고, 단순히 개인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근거로만 판단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대한한의사협회는 뒤를 이어 “2014년 정부의 규제기요틴 선결과제에 선정된 후에도 의료계의 직역 이기주의로 단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해왔다”면서 “헌법재판소가 한의사의 사용을 결정한 의료기기로 한의사가 진료행위를 하고, 이를 건강보험에 적용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수순”이라고 반박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