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에너지기업 CERCG의 자회사가 발행한 (매출)채권이 최근(지난 9일) 부도 처리됐다. 이에 이 채권을 담보(기초자산)로 국내 발행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도 결국 부도 처리됐다. CERCG의 자구안이 남아있긴 하지만 1650억원 가량의 ABCP가 사실상 휴지조각이 된 셈이다.
이로 인해 ABCP를 놓고 얽히고설킨 국내 금융투자사 간에 소송전이 벌어지고 있다.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현대차증권이 ABCP 발행을 담당한 한화투자증권 직원을 경찰에 고소, 경찰은 한화투자증권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유안타증권과 신영증권은 채권단에 들어가지 않은 채 현대차증권을 상대로 각각 150억원, 100억원 규모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 증권사는 현대차증권이 ABCP를 다시 사주겠다고 구두 약속했으나 부도 가능성이 커지자 재매입에 나서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금융투자사 간에는 소송전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고, 발행주관사인 한화투자증권은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구조가 복잡해 투자자들이 이번 사태로 어떻게 손실을 보게 된 건지 선뜻 이해가 가질 않는다. 또 누가 이번 사태를 책임져야 할 지도 모호하다.
이처럼 복잡하게 얽힌 이번 부도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선, 우선 문제의 발단이 된 ABCP가 무엇인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ABCP는 자산유동화증권(ABS)의 한 종류로 부동산, 채권, 유가증권 등 바로 현금화하기 어려운 자산을 기초로 발행된 어음을 말한다. 일종의 파생상품이다.
기업이 소유하고 있지만 거래가 힘든 자산을 유동성이 높도록 바꿔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유동화를 목적으로 설립하는 페이퍼 컴퍼니인 유동화전문회사(SPC)를 통해서만 발행할 수 있다. 개인이 직접 매매를 하거나 증권을 발행할 수 없어서다. SPC는 기업에게서 해당 자산을 서류상으로 사들이고 그 자산을 담보로 ABCP를 발행한다.
예를 들어보자. A기업이 소유 중인 1000억원의 토지가 있다. 이 토지(자산)에서는 매달 10억원의 임대수익(매출)이 난다. A기업이 연구개발을 위해 당장 10억원의 현금이 필요하다면, 우선 토지를 담보로 은행에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또다른 방법으로는 임대수익(매출)을 담보로 채권을 발행해 판매할 수 있다. 은행 대출보다 낮은 금리로 채권을 발행해 구매(수요)자가 나선다면, A기업은 낮은 조달 비용으로 10억원의 현금을 확보할 수 있는 셈이다.
이후 채권 구매자가 현금을 확보해야 한다면 SPC를 만들어 A기업이 발행한 채권을 담보로 어음을 발행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ABCP다. 다른 구매자(수요자)가 나서 이 ABCP를 사고 또다시 유동화 시킬 수 있는 셈이다. 이같은 유동화 과정은 증권, 펀드 등으로 파생, 끊임없이 진행될 수도 있다.
이처럼 ABCP는 기업의 경우 단기(통상 1년 미만)에 유동성 확보가 가능하고, 투자자(수요자) 입장에서는 동일한 신용등급을 가진 채권에 대해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다만 채권 발행 기업이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할 경우 ABCP가 부도 처리되는 위험은 항상 존재한다. 한 기업의 채권 부도 피해가 ABCP와 관련된 모든 투자자에게 확산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번 사태를 책임져야 할 곳과 피해자가 누구인지 알아보자.
중국 에너지기업 CERCG의 자회사가 발행한 1억5000만달러 규모의 채권을 한화투자증권이 매입했다. 이후 한화투자증권은 이베스트투자증권과 함께 SPC를 설립해 매입한 CERCG 채권을 담보(기초자산)로 국내에 ABCP를 발행했다. 채권평가는 나이스신용평가가 맡았다. 이 과정에서 한화투자증권은 채권 매입 비용을 회수하면서 이베스트증권, 나이스신용평가과 함께 ABCP 발행 관련 수수료를 챙겼다.
이들이 발행한 ABCP는 현대차투자증권(500억원), BNK투자증권, KB증권, 부산은행, KTB자산운용(이상 각 200억원), 골든브릿지자산운용(60억원), 하나은행(35억원) 등 총 7곳이 1650억원 가량 투자했다. 이 중 KTB자산운용과 골든브릿지자산운용은 해당 ABCP를 기초자산으로 한 펀드를 개인투자자에게 판매했다.
결국 CERCG 채권 부도에 따른 피해는 ABCP를 매입한 7개 금융사뿐만 아니라 가장 끝단에 위치한 개인 투자자까지 미치게 된 셈이다.
하지만 이번 부도 사태를 책임질 수 있는 주체는 애매하다. 채권 부도에 따른 책임은 원칙적으론 발행 주체인 중국 기업에 있다. 그러나 이 기업은 이미 채무불이행(디폴트)를 선언한 상태다. 돈을 갚을 수 없다고 선언한 것.
그렇다면 부도난 채권을 근거로 ABCP를 국내에 유통시킨 한화투자증권, 이베스트투자증권 등에게 피해 배상을 요구할 수 있을까. 이것도 쉽지 않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들은 SPC에 설립한 투자자이지 ABCP발행 주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 채권과 관련된 투자 비용을 모두 회수해 답답할 것이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ABCP는 부도처리됐지만, 이들은 수수료까지 챙기면서 수익을 창출했다.
이번 채권 부도로 인해 ABCP 투자 피해자는 있지만,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은 셈이다. 바로 이런 점이 중국발 ABCP 부도 사태의 해결을 어렵게 만들고 국내 금융사 간 법적 분쟁으로 치닫는 이유다.
김태림 기자 roong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