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 피해자들에 “중재안 조건 없이 수용…진심으로 사과”

삼성전자, 반도체 피해자들에 “중재안 조건 없이 수용…진심으로 사과”

기사승인 2018-11-23 11:56:34

삼성전자가 반도체 피해자 대변 시민단체 ‘반올림’과 협약식을 진행, 이르면 올해 안으로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 보상을 시작한다.

삼성전자와 반올림은 23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삼성전자-반올림 중재판정 이행합의 협약식’에서 조정위원회가 제시한 중재안을 모두 수용하기로 합의, 협약서에 서명했다. 

협약식에는 삼성전자 김기남 대표이사(사장), 황상기 반올림 대표, 김지형 조정위원회 위원장, 안경덕 고용노동부 실장, 심상정 정의당 의원,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정미 정의당 대표 등이 참석했다.

앞서 삼성전자와 반올림 측은 지난달 1일 중재위원회로부터 받은 중재판정서를 따를 것을 서로 합의한 바 있다. 중재판정서는 ▲중재합의서의 지원보상업무를 위탁할 기관은 ‘법무법인 지평’으로 한다 ▲지원보상위원회의 위원장은 ‘김지형(법무법인 지평)’으로 한다 ▲ 발전기금을 기탁할 기관으로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으로 한다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날 협약 내용에 따라 법무법인 지평과 김 위원장은 조속한 시일 내에 피해자 지원보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곧바로 지원보상 사무국 개설과 지원보상위원회 구성 작업에 착수할 방침이다.

김 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고통과 갈등이 없는 사회가 아니라, 고통과 갈등을 치유할 힘을 가진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며 “서로 다른 입장과 가치에 대해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어나가면서 화해를 위한 불씨를 키워나갈 때 우리는 치유에 이를 수 있다. 이번 조정과 중재 절차가 바로 그것을 보여준 하나의 전형이 됐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조정위원회는 지난달 1일 중재판정과 동시에 권고문을 채택했다. 이 문제를 계기로 삼아, 앞으로 우리 국가와 사회가 노동자의 건강권이라는 기본적 인권 보장을 위해 무엇을 다해야 할지 함께 고민해 보자는 뜻도 권고문에 담았다”면서 “정부를 대표하여 고용노동부, 국회를 대표하여 환경노동위원회가 시즌2를 이끌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김 사장은 연단에 올라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앞서 중재위는 삼성전자가 대표이사 명의로 사과문을 발표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김 사장은 “소중한 동료와 그 가족들이 오랫동안 고통받으셨는데 삼성전자는 이를 일찍부터 성심껏 보살펴드리지 못했고, 조속히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부족했다”며 “그동안 반도체 및 LCD 사업장에서 건강위험에 대해 충분한 관리를 하지 못했다. 병으로 고통받은 근로자와 그 가족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그는 “삼성전자는 지난달 1일 발표된 중재안을 조건 없이 수용하여 이행할 것을 약속드린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삼성전자는 더욱 건강하고 안전한 일터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했다.

삼성전자는 중재안에 따라 회사 홈페이지에도 사과문과 지원보상 안내문을 게재할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지원보상을 받은 반올림 피해자에게는 개별적으로 대표이사 명의로 사과문을 전달할 방침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해서 일하다 숨진 고(故) 황유미씨의 아버지인 황 대표도 소회를 전했다. 황 대표는 “오늘 삼성전자 대표이사의 사과는 솔직히 직업병 피해 가족들에게 충분하지는 않다. 지난 11년간 반올림 활동을 하면서 수없이 속고 모욕당했던 일이나 직업병의 고통,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아픔을 생각하면 사실 그 어떤 사과도 충분할 순 없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저는 오늘의 사과를 삼성전자의 다짐으로 받아들이겠다. 이번에 마련된 안을 통해 보상 대상을 기존 삼성전자의 기준보다 대폭 넓히고, 저희 반올림이 알고 있는 피해자들만이 아니라 미처 저희에게 알리지 못하셨던 분들도 포괄하게 되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직업병 예방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황 대표는 “노동자가 무슨 화학 물질을 쓰는지 알 수 있게 노동자와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알 권리, 참여할 권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산업안전보건법을 강화해야 한다”며 “정부와 국회는 원청 사업주의 책임을 엄격히 묻는 제도를 만들고 대기업들은 솔선해서 안전보건에 대해 책임질 계획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을 대신해 협약식에 참석한 안경덕 고용노동부 실장도 축하의 말을 전했다. 안 실장은 “법과 제도의 현실적 한계 속에서 정부가 미처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조정위원회가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합의를 끌어낸 것은 단지 삼성과 반올림의 문제를 해결한 것 이상의 성과”라며 “특히 중재판정서에서 제시한 새로운 문제 해결방식과 기준들은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주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안 실장은 “반도체와 같이 기술발달 속도가 매우 빠른 첨단산업의 경우, 전통적인 방식의 산업안전보건 시스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정부는 선제적 예방은 물론 조기에 피해자를 발견하는 시스템을 강화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이날 협약식을 기점으로 합의이행을 위한 업무는 법무법인 지평과 지원보상위원회로 넘어간다. 삼성전자와 법무법인 지평은 조속한 시일 내에 피해자 지원보상을 위한 업무협약을 진행, 곧바로 지원보상 사무국을 개설할 예정이다. 법무법인 지평은 이르면 다음 달 초 사무국을 개설, 올해 안으로 지원 보상을 시작할 계획이다.

이승희 기자 aga445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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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445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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