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물 '끊지말고 줄이자'는 위해감축, 정신의학계는 '글쎄'

중독물 '끊지말고 줄이자'는 위해감축, 정신의학계는 '글쎄'

문옥륜 한국위해감축연구소 초대회장 "중독물 금하거나 방치하기보다 인도적, 치료적 대안줘야"

기사승인 2018-12-15 04:00:00

“얼핏 보면 중독 환자에게 무작정 마약, 담배, 술을 주자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문옥륜 한국위해감축연구회 초대회장(서울대 보건대학원 명예교수)은 “중독물을 갑자기 끊으면 나타나는 심각한 금단현상이 나타난다. 이를 막기 위해서 조금씩 양을 줄여가며 치료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약물(마약), 알코올, 담배, 도박, 그리고 비만(음식중독) 등 중독 및 위해물질을 끊기 힘들다면 먼저 줄이자는 위해감축(Harm Reduction)에 대한 설명이다. 위해감축 개념에서는 중독환자에 대한 관리를 ‘근절’이 아닌 ‘최소화’ 또는 ‘감축’을 목표로 삼는다. 예를 들어 약물 중독 환자에게 약물 사용을 금하는 것 보다 최소한의 약물이나 대체재를 국가가 처방하는 편이 폐해를 줄이는 데 보다 효과적이라는 시각이다.

공중보건학계 원로인 문 회장은 “중독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뤄지려면 중독자의 분포, 구성, 크기 등 기본 현황이 확인돼야 하는데 거의 파악되지 않고 있다. 술, 담배. 마약과 같은 중독문제가 이중삼중으로 겹친 경우에도 사회통념상 파헤치기가 어렵다”며 기존 중독 관리 방향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중독 문제의 실마리를 찾고 근거 기반의 관리 정책을 뒷받침하려면 이 방향(위해감축)의 접근이 필요하다”며 “(위해감축연구회가)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것은 중독물의 근절, 퇴치이지만, 환자에게 차선책을 준다는 점이 기존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국내 상황에 적용하기에는 급진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약물 중독 환자에게 저용량 약물 또는 대체약물을 처방하거나, 알코올중독 환자에게 일정수준의 알코올을 제공하는 등 다소 파격적인 방법도 진지한 고려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문 교수는 “알코올중독 환자들이 술을 끊으면 금단현상이 심하게 나타난다. 환각이 보이고 포악해지기도 한다. 괴로워하는 환자를 그대로 두는 게 아니라 조금씩 알코올 양을 줄여가도록 돕는 방법이다.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이를 적용하는 국가도 적지 않다”며 “의료진이 일방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견딜만한 상태인지 환자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적정 용량을 합의한다”고 설명했다.

문 교수는 “차선의 것을 줌으로써 최악을 막고, 억압적으로 중독물을 금하거나 방치하기보다 인도적, 치료적 대안을 주는 방식이다. 그러나 위해감축 프로그램만으로 위해 자체를 퇴출하거나 근절하기는 어렵다. 대상자 특성에 맞는 다양한 정책이 모색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주장에 중독정신의학계는 ‘중독문제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환영한다’면서도 의료현장 도입에는 우려를 표했다. 의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아 환자에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노대영 한국중독정신의학회 기획이사(한림대춘천성심병원)는 “포르투갈 등 마약 문제가 심각한 국가에서 이 정책을 시도해 긍정적인 효과를 얻은 사례가 있다. 그러나 사회문화적 배경이 달라 일반화하기는 어렵다”며 “의학적으로 중독환자에게 약이나 술을 제공하는 방식의 치료 효과는 입증된 바는 없다. 또 심한 알코올중독 환자는 술을 조금만 마셔도 중독 스위치가 켜져 절주를 권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다만, 개인이 중독문제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고 변화할 기회를 주는 접근은 긍정적이다. 게임중독의 경우 알코올이나 약물처럼 즉각적이지 않아서 무조건적인 근절이 아니라 조절하는 치료 방식을 시도할 수 있다”며 “사람의 행동은 단순하지 않고 여러 측면에서 결정된다. 때문에 중독문제에 대한 철학적 사고와 시도는 다양할수록 좋다”고 의견을 표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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