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부 적자 국채 발행 관련 의혹을 폭로한 신재민 전 사무관에 대한 고발 취하 여부에 대해 “개인적으로 깊이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기존 입장에서 변화를 시사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신 전 사무관은 1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 등장했다. 문 대통령은 ‘신 전 사무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자신이 아는 좁은 세계 속 일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정책 결정은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신 전 사무관이 알 수 없는 과정을 통해 결정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앞서 신 전 사무관은 기재부가 KT&G 사장 선임과 적자 국채 발행 논의 과정에서 청와대의 강압적 지시가 있었다고 폭로했다. 이에 기재부는 반박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2일 공무상 비밀누설과 공공기록물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신 전 사무관을 검찰에 고발했다.
기재부는 신 전 사무관을 상대로 즉각 고소 조치를 취하는 등 강경 대응해왔다. 이를 두고 신 전 사무관 사례를 그대로 둔다면 공무상 취득하게 된 자료를 무단 유출해 사실과 다른 내용을 주장하는 ‘제 2의 신재민’ 사건이 일어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윤태식 기재부 대변인은 고발 이유에 대해 “유사한 자료 유출 건이 다수 발생할 경우 향후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생각해보기를 바란다”며 “공익적 제보에 대한 판단은 법원이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정부에 신 전 사무관에 대한 고발 철회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왔다. 지난 6일 내부제보실천운동, 지난 4일 참여연대가 잇따라 성명을 발표해 신 전 사무관에 대한 기재부 고발은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내부제보실천운동은 “촛불정부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가 신 전 사무관의 문제 제기에 검찰 고발로 대응하는 것은 세련되지 못한 동시에 국민 지지를 구하기 어려운 문제해결 방식”이라며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타인의 관리와 명예를 침해하지 않는 범주 내에서 자신이 체감하고 있는 부조리와 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법조계에서도 신 전 사무관에 대해 현행법상 처벌이 쉽지 않다고 본다. 신 전 사무관이 유출한 KT&G 동향 문건이 공무상 비밀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박경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2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번에 공개된 내용은 법으로 비밀로 지정된 것도 아니고 특별히 비밀로 할 정치·경제·사회적 필요도 없는 사안”이라며 “세상의 모든 공익제보자를 위해 기재부가 형사고발만큼은 철회해줄 것을 간곡히 부탁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공익신고자보호법에는 공익신고자 개념을 상세하게 제시하고 보호조치를 규정하고 있는데 신 사무관 폭로는 요건에 딱히 맞는 게 없긴 하다”면서도 “신 전 사무관 폭로가 공익제보로서 정당하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법을 떠나 정부가 굳이 신 전 사무관 행위를 고발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짚었다.
여당에서 신 전 사무관을 인격 모독하는 발언이 이어지고, 급기야 신 전 사무관이 자살을 시도하자 ‘동정론’이 인 것도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일 ‘신재민을 분석한다’는 글을 올려 “신재민은 진짜로 돈을 벌러 나온 것”이라며 “나쁜 머리 쓰며 위인인 척 위장하고 순진한 표정으로 떠드는 솜씨가 가증스럽기 짝이 없다”고 비난했다. 그러다 지난 3일 신 전 사무관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 글을 삭제했다. 또 민주당 대변인은 지난해 신 전 사무관 폭로를 두고 ‘꼴뚜기가 뛰니 망둥어도 뛴다’고 원색 비난하기도 했다. 결국 손 의원은 지난 4일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고발당했다.
다만 기재부가 신 전 사무관에 대한 고발을 취소하더라도, 검찰 수사는 계속될 전망이다. 신 전 사무관이 받는 공무상 비밀누설과 공공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가 친고죄(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죄)나 반의사불벌죄(피해자가 가해자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처벌할 수 없는 죄)에 해당하지 않는 까닭이다.
지난 3일 신 전 사무관 동문들은 호소문을 통해 “정부와 일개 전직 사무관은 애초에 싸움이 되지 않기에 싸울 것이 아니라 그의 의견에 귀 기울여 달라”며 “그는 공익을 목표로 행동한 만큼 그 결과에 대해 너무 가혹한 책임을 묻지 않아주시기를 거듭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