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 농구팀 성추행 사건이 발생한지 10여년. 종목만 바뀌어 성폭력 사건 피해자들의 피맺힌 호소가 현재 다시 되풀이 되고 있다. 왜 체육계에서 성폭력은 반복되는 걸까?
이 질문의 답은 우리나라 체육계의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다는 것이 관련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성적 제일주의와 주종에 가까운 사제관계, 선수의 장래를 인질로 진실을 은폐하려는 폐쇄적 분위기 등이 맞물려 성폭력을 저지른 가해자는 여전히 선수를 지도하고, 피해자는 숨죽이는 관행이 되풀이 되고 있다는 말이다.
정용철 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만약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논란이 없었거나 문재인 대통령이 일정에 없는 진천방문을 하지 않았다면, 쇼트트랙 주장선수였던 피해자가 선수촌을 이탈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겠느냐”고 반문한다. 어쩌면 조재범 성폭행 의혹 사건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 정 교수의 일갈이다.
지난 해 미투 운동이 각계로 확산됐지만, 스포츠 분야는 조용했던 이유에 대해 정 교수는 “지금까지 스포츠계의 미투에는 무수한 미(me)만 존재하고 연대하고 지지하는 투(too)가 없었다”고 꼬집는다.
선수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코치와 감독,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차단된 폐쇄적인 합숙소와 훈련장, 그리고 사고가 났을 때 묵인, 방조 심지어 공조하는 침묵의 카르텔 등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기에 최적화된 체육계 관행과 성문화가 이번 사건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함은주 문화연대 집행위원은 숱한 스포츠 규정과 위원회, 스포츠인권센터, 클린센터, 스포츠비리신고센터가 존재하지만, 성폭력 피해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대한민국 스포츠, 대한체육회의 정체성에 대한 성찰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필요하다”며 “스포츠 가치와 원칙을 실현하고 대한민국의 스포츠 하는 사람을 보호하고 지원해 줄 수 있는 독립된 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문화비전 2030에서 제시된 ‘(가칭)스포츠윤리센터’의 설립 등이 그것.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현재의 체육계 성폭력 대책이 과거보다 퇴보했다고 지적한다. 이 소장은 “문화체육관광부, 대한체육회의 대책 발표를 보면, 전체 청사진 없이 당장 진행해야 할 사항을 나열하고 있다”며 “12년 전(농구선수 성추행 사건)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여성대표성 등의 내용은 실종돼 사실상 후퇴됐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권미혁 원내대변인도 이 같은 견해에 입장을 같이 했다. 권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침묵의 카르텔에 동조해온 공범들을 걷어내고 체육계를 새롭게 쇄신할 인물들로 다시 구성해야 한다”면서 “실효성 없는 감사와 조사, 신고체계를 개혁해야한다”고 밝혔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