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을지로3가역 인근 전통 맛집인 ‘을지면옥’ 등이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사업 본격화에 따라 철거될 상황에 처하면서, 을지로 재개발 사업을 두고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현재 을지로 세운상가 일대는 재개발사업인 세운재개발촉진지구와 수표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돼있고 세운3-1구역과 세운3-4·5구역의 철거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관련 업계에서는 을지로 일대는 현재 노후화된 건축물들이 상당해 재개발을 피할 수 없다는 입장이면서, 동시에 과거 용산 참사와 같은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는 해당 지역 내 세입자들을 대상으로 적절한 보상 등이 이뤄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10년 전 오늘, 용산에서는
2009년 1월 20일 용산참사(용산4구역 철거현장 화재사건)가 일어났다. 경찰이 재개발로 집과 가게를 잃게 된 영세 세입자 농성을 진압하던 중 화재가 나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원 1명이 숨지고 23명이 중경상을 입은 사건이다.
서울시 도시환경정비사업지구인 용산4구역(한강로3가 63~70번지 일대 5만3442㎡) 세입자들은 재개발조합(토지·건물 소유주)이 제시한 휴업보상금 3개월분과 주거이전비 4개월분에 수긍할 수 없었다.
해당 부지에는 40층 규모 초대형 평형의 주상복합 아파트 등이 들어설 예정이었다. 부동산 소유주와 시공사는 주상복합 아파트 단지를 개발하길 원했고, 영세 세입자들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지키고자 했다.
2009년 1월 19일 영세 세입자 및 전국철거민연합회 회원 등 30여명은 철거 직전인 한강로2가 ‘남일당’ 건물 옥상에 올랐다. 몸으로라도 철거를 늦춰 자신들의 사정을 공개적으로 알리기 위함이다. 다음날 새벽 경찰특공대와 용역업체 직원들은 진압을 시작했다.
화재 원인, 참사 원인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이날 6명의 죽음은 변합없는 사실이다. 이날 경찰은 농성자들이 인화성 물질(시너)을 준비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현장에 화학소방차조차 대기시키지 않았다.
◇2019년 1월, 을지로에서는
현재 을지로에서는 10년 전과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사업이라는 재개발 사업의 이름하에 해당 부지 내에서 근무하던 영세 세입자들이 쫓겨날 위기에 처한 것.
세운재정비촉진사업은 2006년부터 추진됐다. 세로로 길게 난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양쪽 구역을 모두 재개발한다는 구상이다. 서울시가 2015년 세운상가 재생사업인 ‘다시 세운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본격적인 재생 바람이 불었다. 서울시는 세운상가 일대 제조업의 잠재력을 활용해 ‘메이커스 스페이스’로 만들겠다며 홍보했다.
하지만 세운재정비촉진사업으로 인해 세운상가만 남겨질 위기에 처했다. 올 초부터 본격적인 철거 작업에 들어간 세운재정비촉진지구 3-1, 3-4·5구역의 경우 영업하던 400여개의 공구상이 이전하거나 폐업했다. 그 자리에는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지난해 말 서울시가 발표한 주거비율이 90%까지 높아지는 도심 재개발 사업의 첫 번째 대상 지역이다.
논란이 불거지자 박원순 서울 시장은 최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청계천·을지로 일대의 재개발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이르면 이번 주 안에 을지로 일대 재개발과 관련한 시의 입장과 구체적 방안이 담긴 ‘도심 산업 활성화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앞서 박 시장은 SNS를 통해 “더 이상 이 땅에서 10년 전 용산참사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개선은 물론 대화와 타협, 때로는 양보까지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똑같은 전철 밟지 않기 위해서는
업계 전문가들은 재개발 사업의 문제를 낭만적으로만 바라보면 안된다는 입장이다. 해당 지역이 역사적으로 보존 가치도 있지만 이미 상당히 노후화가 진행된 상태라 개발을 해야만 한다는 설명. 전문가들은 세입자들을 대상으로 적절한 보상 등을 통해 개발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심교언 교수(건국대 부동산학과)는 “보존해야한다면 추가적인 비용이 들기 마련인데, 이 비용은 나라에서 세금으로 충당하는 게 맞다고 본다”며 “이를 개발 사업자에게 부담주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오래된 건축물들을 가지고 보존해야 한다면 강북의 경우 재개발 사업을 다 멈춰야할 것”이라며 “사업이 자꾸 중단 되는 건 주택공급 효과에 있어서도 좋지 않다. 사업을 진행해 나가면서 해결 가능한 방향이 있을 거다”라고 말했다.
이창무 교수(한양대 도시공학과)는 “이같은 분쟁은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있을 때 늘 존재해왔다”며 “그나마 최근엔 과거처럼 세입자들이 무작정 내몰리지 않고 그들에게 돌아가는 몫이 개선되고 있기 때문에, 적절한 보상이 이뤄진다면 개발에 대한 거부 필요성은 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재개발 문제를 국지적인 세입자 문제로 풀기보다 다각적으로 계층간 복지 문제로 접근하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그렇게 된다면 도시에 변화를 만드는데 좋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