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간 ‘해상자위대 초계기 저공 위협 논란’ 여파가 양국 방위협력까지 미치고 있다.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23일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레이더 조사(照射ㆍ겨냥해 쏨) 문제 여파로 올해 봄 예정됐던 일본 해상 자위대 호위함의 부산 입항을 보류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 집권 자민당 국회의원들 사이에서는 한국과 방위협력을 중단해야 한다는 성토가 쏟아졌다. 이와야 다케시(岩屋毅) 일본 방위상은 지난 22일 레이더 갈등 논의를 위해 연 국방부 위원회에서 참석 의원들의 “한국과 방위협력을 재검토하라”는 강경 발언에 “타이밍과 내용에 따라 적절히 판단하겠다”고 답했다. 앞서 “한일, 한미일 방위협력을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던 입장에서 한발 뒤로 물러난 셈이다.
지난 21일 일본 방위성은 일방적으로 한국 측과의 실무협의 중단을 통보했다. 방위성은 같은날 홈페이지에 ‘한국 레이더 조사 사안에 대한 최종 견해’라는 성명을 올렸다. 해당 성명을 통해 일본 측은 “한국 측에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사실을 인정하려는 자세가 보이지 않는다”며 “레이더 조사 유무에 대한 실무협의를 계속하는 것은 더 이상 곤란하다고 판단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또 방위성은 ‘사격통제레이더(STIR) 탐지음’, ‘수색용 레이더 탐지음’ 등 자국 해상자위대에 기록된 2개 음성파일을 추가로 공개했다. 방위성은 STIR은 일정한 소리가 지속적인데 비해 수색용 레이더는 소리가 끊겨 들린다며, 이는 광개토대왕함이 공격용레이더를 조사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국방부는 일본이 양국 협의를 중단한 데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그리고 일본이 추가로 내놓은 증거 자료에 대해서는“실체를 알 수 없는 기계음”이라고 지적했다.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이번 사안의 본질은 인도주의적 구조활동 중인 우리 함정에 대한 일본 초계기 ‘저공 위협 비행’”이라며 “이에 대한 재발 방지와 사과를 거듭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일본의 ‘치고 빠지기’를 두고 애초부터 진상규명보다는 여론전에 주안점을 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한일 레이더 갈등 이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내각에 대한 지지율이 지난달보다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22일 극우 성향 산케이신문이 지난 19~20일 후지뉴스네트워크(FNN)와 함께 18세 이상 국민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아베 내각 지지율은 지난달보다 4.2% 포인트 상승한 47.9% 였다. 또 한일 레이더 갈등과 관련, 당시 영상을 공개한 일본 측 대응에 대해서는 85%가 ‘지지한다’고 답했다.
일각에서는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를 앞두고 ‘재팬 패싱’(한반도 문제에서 일본만 배제되는 현상)을 우려, 일본이 돌연 협의 중단을 선언한 것 같다는 관측도 나왔다. 지난해 일본 정부는 싱가포르에서 1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는 ‘화해 분위기’ 속에서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내달 열리는 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도 일본은 초조한 기색이 역력하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일 북미 실무협상이 진행된 스웨덴에 초청받지 못했음에도, 자국 북핵수석을 급파했다. 그러나 아사히신문은 23일 스웨덴에 파견된 외무성의 가나스기 겐지(金杉憲治) 아시아대양주 국장과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과 접촉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일본은 한국과 실무협상을 중단하면서도 레이더 갈등에 대한 일본 입장을 10여 개 언어로 알리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측면 공세’는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