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24일 발부됐다. 예상외라는 반응이 나온다.
법조계에서는 박병대 전 대법관 영장은 발부되더라도 양 전 대법원장 구속은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명재권 서울중앙지법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범죄사실 중 상당 부분 혐의가 소명되고 사안이 중대하다”며 “현재까지 수사진행과 피의자 지위 및 중요 관련자들의 관계 등에 비춰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먼저 양 전 대법원장 측이 아랫사람들에게 책임을 떠넘긴 게 패착으로 꼽힌다. 양 전 대법원장은 ‘대법원장의 지시를 받았다’는 후배 법관들의 진술을 제시한 검찰에 ‘거짓 진술 내지는 모함’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이규진 서울고법 부장판사 수첩에서 대법원장 지시를 뜻하는 ‘大(대)’ 자 표시를 두고서는 사후에 조작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박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이 같은 태도는 자충수로 작용했다. 재판부에 “증거를 적극적으로 인멸할 우려가 있다”는 인식을 심어줬다는 평가다.
또 검찰의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을 여럿 제시한 게 영장발부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김앤장 독대 문건’, ‘이규진 수첩’, 판사 블랙리스트를 양 전 대법관이 자필로 결재한 문서 3개다. 검찰이 법률사무소 김앤장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독대 문건에는 지난 2015~2016년 양 전 대법원장이 한상호 김앤장 변호사 등을 여러 번 만나 일본 강제징용 소송 절차를 논의한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제 강제징용 절차와 관련해 청와대, 사법부, 김앤장이 긴밀히 내통하고 있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다.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일했던 이 부장판사의 수첩 3권에는 양 전 대법원장 등 윗선 지시나 보고 내용이 담겼다. ‘大(대)’자가 양 전 대법원장 지시사항을 의미한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마지막으로는 법원행정처가 인사 불이익 대상자를 선별해 보고한 ‘판사 블랙리스트’다. 이 문서에는 양 전 대법원장이 직접 ‘V’ 표시를 하는 등 의사표시 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다.
일각에서는 법원이 객관적 증거들이 나온 상황에서 구속영장을 기각했을 때 비판 여론을 우려해 전직 사법부 수장을 구속하는 고육지책을 택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인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YTN라디오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양 전 대법원장 구속을 두고 “법원의 가장 수치스러운 날이자 법원이 사법농단 사태를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