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양승태 구속됐지만…재판거래 상흔 ‘여전’

‘사법농단’ 양승태 구속됐지만…재판거래 상흔 ‘여전’

기사승인 2019-01-25 05:30:00

‘사법농단’ 의혹의 정점으로 꼽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4일 구속됐다. 그러나 사법농단의 상처는 지워지지 않았다. 양 전 대법원장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박근혜 청와대와 ‘재판거래’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누군가는 판결을 기다리다 눈을 감았다. 뒤늦게 복직이 확정됐지만, 떠나버린 동료는 돌아오지 못했다. 

▲13년 만의 승소 판결…신일철주금 피해자 12명 중 2명만 남아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에 강제동원됐던 피해자 4명은 긴 시간이 지나서야 승소 판결을 받았다. 소송제기 후 무려 13년 만이다. 대법원은 지난해 10월30일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원을 배상하라”는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항소심 후 5년 넘게 최종 판결을 내리지 않았다. 피해자와 시민단체의 호소에도 답을 주지 않았다. 이후 양승태 사법부에서 박근혜 정부와 공모, 일본과 마찰 소지가 있는 재판을 고의로 지연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대법원은 지난해 7월 해당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판결의 속도를 올렸다.      

지연된 재판은 고령의 피해자들에게 ‘사과받을 기회’를 앗아갔다. 원고로 참여한 피해자 4명 중 승소 판결을 지켜본 이는 이춘식(94)씨 단 한 명뿐이었다. 재판이 지연된 5년 동안 3명의 원고가 세상을 떠났다. 이씨 등의 소송이 지연되며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 등 15건의 재판 역시 중단됐다. 태평양전쟁보상추진협의회(보추협)에 따르면 현재까지 신일철주금 관련 소송을 제기한 강제동원 피해자는 총 12명이다. 이 중 10명의 피해자가 판결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소송을 진행 중인 다른 피해자 역시 기약 없는 판결을 기다리며 마음을 졸여야 했다. 

김진영 보추협 간사는 “연로한 피해자들이 재판 지연으로 받았던 고통을 말로는 표현하기 어렵다”며 “1~2년 전만 해도 정정했던 분들이 쇠약해지는 걸 보며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투쟁 끝에 복직했지만…돌아오지 못한 동료들 

사법농단의 여파는 노동 관련 소송에도 미쳤다. 쌍용차 노동자 정리해고 사건과 KTX 승무원 해고 사건이 대표적이다. 두 사건 모두 항소심에서 “해고가 부당하다”는 취지의 판결을 받았으나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두 판결을 각각 지난 2014년, 2015년 ‘최악의 걸림돌 판결’로 꼽았다.  

KTX 해고 승무원들은 지난 2010년 1심에서 “승무원들과 한국철도공사는 직접 근로관계가 인정된다”며 해고 무효 판결을 받았다. 인당 8640만원의 미지급 임금을 지급하라는 명령도 함께였다. 항소심 판결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를 파기환송했다. 승무원들의 패소였다. 앞서 지급됐던 임금도 한국철도공사에 돌려줘야 했다. 대법원 판결 후, 승무원 박모씨가 3살 난 아이를 남겨두고 목숨을 끊었다. 180명이었던 승무원들은 경제적·심적 고통으로 하나둘 투쟁을 포기했고 33명만이 현장을 지켰다. 이후 지난해 KTX 승무원 해고 판결이 재판거래의 대상이었다는 의혹이 나왔다. 해고 승무원들은 한국철도공사 사장과의 면담을 요구, 180명 전원 복직을 약속받았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도 2010년 해고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회계 조작에 의한 정리해고는 부당하다”고 선고했으나 대법원은 해고가 적법하다고 봤다. 쌍용차 해고 사태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해고 노동자와 가족은 30명에 달한다. 이 중 5명은 대법원의 판결 이후 세상을 등졌다. 이후에도 긴 투쟁이 이어졌다. 쌍용차 노사 양측은 지난해 9월에서야 해고노동자 119명의 전원 원상복직을 합의했다.

긴 시간을 돌아 제자리를 찾았지만 떠나간 동료의 빈자리는 크다. 김승하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장은 “양 전 대법원장의 얼굴이 TV에 비칠 때마다 세상을 떠난 친구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며 “요즘같이 기사가 쏟아지는 때에는 매일 그 친구의 기일 같다”고 말했다. 상처도 깊다.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은 “2014년 항소심에서 승소했을 때 동료와 가족의 환호성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면서 “대법원 판결 이후 희망이 무참히 짓밟혔다. 박근혜 청와대의 ‘제물’이 됐다는 것에 분노를 참을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제자리에 멈춰선 ‘콜트·콜텍’·‘전교조’·‘통진당’ 판결   

양승태 사법부의 판결 이후부터 지금까지 투쟁을 벌이는 이들도 있다. 콜트·콜텍 노동자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구 통합진보당(통진당) 의원 등이다. 

대법원은 지난 2012년 기타 제조업체 콜트의 자회사인 콜텍의 정리해고는 적법하다고 봤다. 대법원은 “장래에 도래할지도 모를 경영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해고는 유효하다”고 판시했다. 당시 주심은 사법농단 연루 의혹을 받는 고영한 전 대법관이었다. 이후 2014년 상고는 기각됐다. 콜텍 정리해고 사건은 법원행정처 문건에 박근혜 대통령 국정운영의 ‘협력사례’ 판결 중 하나로 기재돼 있었다. 지난 2006년 시작된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투쟁은 어느새 13년째를 맞았다. 이들에게 재심의 기회를 제공하는 ‘사법농단 피해자 구제 특별법’이 발의됐으나 국회 내에서 논의는 전무하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도 여전히 ‘법외노조’로 활동 중이다. 지난 2013년 고용노동부는 전교조에 “해직교사를 조합원으로 인정한 전교조를 노조로 인정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이후 법외노조 통보처분의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이 진행됐지만 1·2심 모두 법외노조 처분이 적법하다고 봤다. 해당 소송은 결론이 나지 않은 채 대법원에 계류돼 있다.

정당해산심판으로 해산된 통합진보당(통진당) 의원의 지위확인 소송에도 양 전 대법원장의 ‘손길’이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옛 통진당 의원들은 지난 2016년 항소심에서 “의원직 상실은 당연하다”는 판결을 받았다. 즉각 상고했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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