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역경기 균형발전을 위해 발표한 24조원 규모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대상 사업 가운데, 85% 이상이 사회간접자본(SOC)사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건설업계에서는 이번 예타 면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둘로 나뉘었다.
주택경기 침체 등으로 골머릴 앓던 건설사 측은 반기는 모양새다. 이들은 이번 SOC사업이 지역경제 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 거라 내다봤다. 다만 적정 수준 이상의 공사비 지급을 전제했다.
반면 예타 면제 카드가 섣부른 판단이었다고 보는 시각도 존재했다. 예타 면제는 자연재해 등 위급한 상황에서만 사용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들은 이미 엎질러진 물인 만큼, 사업 추진이 제대로 이행되기 위해선 정부 및 시민단체의 철저한 관리·감독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24조 중 85% 이상이 SOC사업
정부는 최근 국가균형발전을 목표로 예타 면제 대상 23개 사업을 발표했다. 총 사업 규모는 24조다. 발표된 예타 면제 사업 중 건설업계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을 SOC사업은 총 20조6000억원 규모다. 다만 접경지대를 제외한 수도권지역을 원칙적으로 제외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수도권과 지방을 연결하는 교통망 확충사업은 5조6000억원(27%)가량이다. 지방과 지방을 연결하는 교통물류사업에는 13조9000억원(67%)이 투입될 예정이다. 철도사업엔 11조9000억원(57%)이, 도로사업은 7조3000억원(35%)이 각각 배정됐다.
교통망 외에도 4조9000억원(23%)을 철도운행확대 및 공공병원, 정화처리시설에 투입한다. 공항 유치 및 관광 상품화 등 지역 활성화 인프라에는 2조6000억원(12%)이 선정됐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23개 예비타당성 면제 사업을 2029년까지 연평균 1조9000억원을 들여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23개 사업은 최대 2029년까지 연차적으로 추진된다”며 “향후 10년간 국비기준 연평균 1조9000억원이 소요되며, 올해 정부 재정 총지출 규모 470조원과 비교할 때 중장기적 재정운용에 큰 부담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뭄에 단비” 지역경제 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 기대
건설업계는 이번 예타 면제가 가뭄에 단비와도 같다고 말했다. 관계자들은 이번 예타 면제로 인해 지역경제는 물론, 일자리 창출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거라고 내다봤다. 그동안 SOC예산이 19조8000억원으로 증액되긴 했지만 여전히 적은 상황에서, 각종 부동산 시장 규제로 인해 주택경기 침체까지 겹치면서 지역경제가 전반적으로 위기였다는 설명이다.
대한건설협회 조준현 부장은 “건설업이 생산유발계수, 고용유발계수에서 1,2위를 차지하는 만큼 이번 예타 면제로 인해 위축된 경기를 부양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본다”며 환영했다.
이어 “예타 면제는 SOC예산의 감소와 부동산 시장 규제 등으로 위기였던 지역경제에 가뭄에 단비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고용유발계수는 10억원을 투입했을 때 늘어나는 고용을 보여주는 지표다. 건설업은 2014년 기준 5.9명으로,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품목 중 하나인 반도체(3.1명)의 두 배에 달한다.
건설업계 또다른 관계자도 “건설업 경기가 좋지 않아서 해외시장 사업도 접고 들어오는 와중에, 이번 정부의 SOC 사업의 대거 예타 면제는 건설사들에게 있어 호재”라고 평가했다.
대한주택건설협회 측에서도 “주택사업 쪽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간접적으로나마 좋은 영향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관건은 철저한 감시체계 및 적정 수준 공사비 지급”
하지만 ▲적정공사비 지급 ▲철저한 감시체계 등이 필요하다며 우려 섞인 목소리도 존재했다. 우선 건설사 측은 SOC사업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창출 효과가 있으려면, 제대로 된 공사비가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상 건설사 입장에서 SOC사업은 큰 수익이 나지 않는 사업으로 여겨진다. 이들은 대형건설사가 공사에 들어가도 공사비가 적정수준 보장되지 않는 한, 하도급 업체 및 근로자들에게 돌아가는 수익도 없을 거라고 지적했다.
조준현 부장은 “공사를 따내도 손실이 나면 경기는 더 나빠진다”며 “나라에서 제대로 된 공사비를 줘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건설업 특성상 발주가 이뤄지면 하도급업체와 근로자까지 내려간다”며 “큰 수익을 바라진 않고 적정 수준의 금액만 지급된다면 근로자 체불 등과 같은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또 정부가 예타 면제 카드를 너무 쉽게 꺼낸 것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존재했다. 이들은 사업이 철저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감시체계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권대중 교수(명지대 부동산학과)는 “자연재해 피해지 등과 같은 긴급한 상황에선 예타가 면제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예타 면제는 그 정도로 위급한 상황이 아니다”라며 “한 번 이렇게 예타 면제가 쉽게 이뤄지면 앞으로 국회의원, 지자체, 지역주민들 사이에서도 예타 면제 요구가 계속 들어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이번 예타 면제는 24조 가량의 토지보상금이 풀리는 것인 만큼 국토부나 시민단체 등에서 철저한 관리·감독이 이뤄져야 한다”며 “그렇지 않을 경우 개발 인근 지역 집값 상승이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심교언 교수(건국대 부동산학과)도 “건설경기 부양효과는 당연히 있을 것”이라면서도 “이번 사업이 잘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향후 유지·관리비가 엄청나게 나올 텐데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지역 균형발전보다도 현재 노후화된 도심지에 대한 유지 및 보수가 더 시급하다는 의견도 존재했다.
건설사 한 관계자는 “균형발전이 지금 우선적으로 필요한 상황인지 잘 모르겠다”며 “유지와 보수 쪽에 초점을 맞추는 게 일자리 창출 등에 있어서 더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