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 양승태(71) 전 대법원장을 구속기소 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 검사)은 11일 오후 양 전 대법원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사법부의 수장이었던 인물이 직무 관련 범죄로 기소되는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검찰에 따르면 양 전 대법원장은 사법농단 관련 47개 범죄 의혹을 받는다. 강제동원 소송 고의지연 등 재판개입 의혹과 사법부 블랙리스트, 비자금 조성 등이다. 그의 공소장에는 ▲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 공무상비밀누설 ▲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 직무유기 ▲ 위계공무집행방해 ▲ 공전자기록위작 및 행사 ▲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혐의가 적시됐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 2011년 9월부터 지난 2017년 9월까지 사법부의 수장으로 불리는 대법원장을 지냈다. 검찰은 해당 기간 양 전 대법원장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 처장(대법관) 등에게 상고법원 도입 등을 위해 재판거래를 지시했다고 보고 있다. 강제동원 소송을 비롯, 옛 통합진보당 의원의 지위확인소송,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법외노조 관련 행정소송,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댓글사건 등에 부당하게 개입한 것으로 파악됐다. 박한철 당시 헌법재판소장을 비난하는 내용의 기사를 대필하도록 법원행정처 심의관에게 지시한 혐의도 있다. 이외에도 전 부산고법 판사 비위 의혹 축소·은폐, ‘정운호 게이트’ 당시 수사정보 불법수집, 대한변호사협회 압박 등의 혐의도 공소장에 포함됐다.
특히 재판거래 의혹 중 하나인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소송에 개입하려 한 정황이 검찰 수사의 스모킹건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양 전 대법원장은 강제동원 소송 주심을 맡았던 김용덕 전 대법관에게 “판결이 그대로 확정되면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는 등 반발할 것”이라며 판결을 뒤집으라는 취지의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양 전 대법원장이 강제동원 소송에서 일본 기업을 대리한 김앤장 법률사무소와 접촉한 정황도 드러났다.
다만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 조사에서 혐의 사실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실무자가 알아서 한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검찰은 같은 날 박 전 대법관과 고 전 대법관도 사법농단 관련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미 구속기소 돼 재판을 받고 있는 임 전 차장에게는 사법부 블랙리스트 관련 혐의가 추가됐다.
검찰은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 전·현직 판사 100여명 가운데 가담 정도를 고려, 이달 안에 기소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앞서 법원은 지난달 24일 “피의자의 지위 및 중요 관련자들과 관계 등에 비춰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헌정사상 최초로 구속된 사법부의 수장으로 기록됐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 사진=박태현 기자 pt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