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 강제실시’ 국내 제약산업 고려한 기준 필요

‘의약품 강제실시’ 국내 제약산업 고려한 기준 필요

개도국의 의약품 생산 요청 증가 예상…세부절차 마련 시급

기사승인 2019-02-21 00:08:00
신종 인플루엔자, 에볼라, 메르스 등 전염병이 세계적으로 유행하면서 각국은 전염병 대응을 위해 방역체계 운영, 의약품 확보 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개발도상국의 경우 전염병에 대비한 의약품 비축량이 부족하고 의약품 제조기술이나 생산설비도 미흡해 전염병이 커다란 인명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는 비상시에 국가가 공중보건을 목적으로 특허권자의 동의 없이 특허의약품을 강제로 사용할 수 있도록 TRIPs(무역관련 지식재산권에 관한 협정) 제31조에 강제실시권을 규정하고 있으며 제31조의2를 신설(2017년 1월 발효) 해 제3국이 위급 상황의 국가에게 의약품을 수출·공급하려는 경우에도 특허의약품을 강제로 실시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을 합의했다.

강제실시는 특허권자가 실시할 수 없거나 실시할 의지가 없는 경우 산업정책적·공익적 입장에서 특허권자 이외의 자에게 특허를 실시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한국지식재산연구원이 의약품 강제실시에 관한 국제규범의 연혁과 최근 동향, 각국의 입법례와 사례 등을 분석해 우리나라의 대응 방안을 검토한 ‘TRIPs 강제실시권 조항 개정의 전개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대응이 필요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TRIPs 개정에 따라 개발도상국에게 특허의약품을 수출ㆍ공급하기 위한 강제실시의 국제법적 근거가 마련됐으나, 향후 개도국과의 FTA 등 통상협상 진행과정에서 강제실시권의 발동 요건과 범위 등에 관해 입장 차이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는 이유다. 

신약개발, 생산능력을 가진 선진국과 그렇지 못한 최빈개도국의 입장차는 크다. 보고서는 강제실시권이 발동되는 의약품의 경우 대부분 선진국의 다국적 제약사가 개발하고 특허권을 보유하는 경우가 많고, 다국적 기업의 이익 일부가 감소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며 이는 통상문제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선진국은 강제실시권이 국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동되는 것인 만큼 수출 목적으로 강제실시권을 사용하는 것은 그 취지에 위반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반면 개발도상국 경우 의약품의 신속한 접근을 용이하게 보장하고, 의약품 가격인하 필요성 및 가격인하를 위해 필요한 경우 의약품 특허보호를 제한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강제실시권을 최대한 활용해 의약품 생산 혹은 수입해 자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려 할 것이고, 도하선언(의약품 생산 능력이 없는 국가의 강제실시권 발동을 통해 의약품을 확보할 수 있도록 실효성 개선, 공중보건 관련 강제실시권의 허용범위, 병행수입 허용 및 권리소진의 인정근거를 구체화했다는데 의의가 있다) 이후 국제사회에서의 강제실시권 관련 사례 중 타미플루나 에이즈와 관련된 사례들이 지속적으로 이슈화할 가능성도 제기했다.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떨까. 낙태약 제조방법,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 에이즈 치료제 푸제온 등에 대해 강제실시권을 청구한 사례가 있었지만 인정되지는 않았다. 다만 2980년 11월 일본 닛봉 소다의 ‘비스-티오 벤젠의 제조방법’에 관한 특허가 정당한 이유 없이 3년 이상 국내 불실시를 이유로 청구됐으며, 특허권자의 3년 이상 불실시가 정당한 이유 없는 특허권 남용으로 판단돼 실시료 3%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강제실시권이 허용된 사례가 있다. 

보고서는 우리나라 특허법상 강제실시권 도입과 개정에 따른 영향으로 개발도상국 내지는 최빈개도국 등이 에이즈, 결핵, 말라리아 등 공중보건의 심각한 문제가 발생해 우리나라에 요청한 경우 인도적 차원에서 의약품을 생산해 해당 국가로 이전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다만 생산된 의약품 전량 수출, 상당한 대가의 지급, 요청절차, 제공 가능한 의약품의 범위 등에 대한 절차 및 제한이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또 향후 FTA 협상 시 의약품 강제실시권 관련해 개도국 및 최빈개도국의 강화 주장이 거세질 수 있어 이에 대한 적절한 입장정리가 필요하고, 강제실시권 발동에 따른 우리 제약산업의 현황 등을 고려해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연구를 수행한 한국지식재산연구원의 이헌희 박사는 “의약품 자체 조달 능력이 없는 개도국이 우리나라에 의약품 생산을 요청하는 경우가 증가할 것”이라며 “우리나라는 특허법 제107조에서 강제실시에 관해 규정하고 있지만 강제실시권 발동의 세부절차는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산업계 의견을 수렴해 이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한국지식재산연구원 권택민 원장은 “막대한 연구개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한 신약 개발 과정을 고려해 의약품 특허권자의 재산권 보호와 인간의 건강권 보장이라는 양자의 균형을 이루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강제실시권을 확대하려는 개발도상국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우리나라 제약산업의 발전 수준을 고려해 무역협상에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조민규 기자 kioo@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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