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만신’ 실존…무형문화재 김금화 선생 별세

영화 ‘만신’ 실존…무형문화재 김금화 선생 별세

기사승인 2019-02-23 22:11:21
국가무형문화재 제82호-2호인 서해안 배연신굿과 대동굿의 보유자인 만신(萬神·여자 무당) 김금화(사진) 선생이 23일 오전 5시57분께 별세했다. 향년 88세.

1985년 국가무형문화재인 배연신굿과 대동굿 보유자로 지정됐으며, 2005년 인천 강화도에 무속시설인 ‘금화당’을 열고 후학 양성과 무속문화 전수에 힘썼다. 2014년에는 일생을 담은 영화 ‘만신’이 개봉돼 무속문화가 화제에 되기도 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1931년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난 김 선생은 12세 때 무병(巫病)을 앓다가 17세에 외할머니이자 만신인 김천일씨에게 내림굿을 받고 무당이 됐다. 

나라굿과 대동굿을 혼자 주재할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인정받아 19세에 독립했다. 1950년 6·25전쟁 때 월남한 그는 무속인 방수덕씨와 인천과 경기도 이천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1965년에 서울로 활동지를 옮겼다.

특히 1972년 전국민속경연대회에 참가해 ‘해주장군굿놀이’로 개인연기상을 받으며 민속학계의 주목을 받았고, 날카로운 작두 위에서 춤을 추며 어장의 풍어(豊魚)를 기원하는 ‘서해안 풍어제’가 유명하다.

그는 1982년에는 한미수교 100주년을 맞아 미국 로스앤젤레스 녹스빌국제박람회장에서 열린 친선공연에서 '철무리굿'을 선보이면서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쳤다. 이후 백두산 천지와 독일 베를린 등지에서 대동굿과 진혼굿 등을 공연하며 국내·외 활동을 이어왔다.

자서전 '비단꽃 넘세'에서 신내림 당시 경험에 대해 “나는 일어나 춤을 추었다. 춤을 추다 보면 나도 모르게 몸의 움직임이 격렬해지고 머리가 쭈뼛거렸다. 그 순간 내 몸 안으로 신이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며 “환영받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설움이, 배고픔이, 아픔이, 원망이 뜨거운 눈물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갔다”고 회고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무녀로 자리매김한 고인은 사도세자, 백남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위한 진혼제와 세월호 희생자 추모위령제를 지냈다.

조민규 기자 kioo@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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