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중국몽에 녹아내린 설빙의 꿈

[기자수첩] 중국몽에 녹아내린 설빙의 꿈

기사승인 2019-02-28 04:01:00


2000년대 초반, 아니 2010년 이후에도 ‘중국산 짝퉁’은 농담이나 유머처럼 소모됐다. 너무나도 어설펐기 때문에 경각심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중국산 제품의 품질이 향상되면서 국내 기업들은 발등에 불이 붙었다. ‘대륙의 실수’라고 애써 차치하던 제품들 역시 이미 국내 제품들과 경쟁하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이는 중국 정부의 자국기업 편애정책에서 비롯됐다. 교묘한 카피제품이 시장에 유통되고, 인접국가에서 이에 대한 이의를 제기해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아직 일당 체제인 특수성이 있고 미국과 대립하는 강대국인 탓도 있지만, ‘자국 산업 보호’라는 기치를 최우선으로 뒀기 때문이다. 물론 과정이 올바르지 못한 것은 사실이나 결과적으로 성공한 셈이다. 

이는 우리 정부의 적극적이지 못한 대응도 한몫했다. 이에 따른 여파는 우리 기업의 피해로 돌아오고 있다. 

최근 국내 빙수 브랜드인 ‘설빙’이 중국 업체인 상해아빈식품무역유한공사에게 9억5640만원이라는 거액의 배상금을 물어주게 됐다. 

설빙은 2015년 상해아빈식품에게 현지 가맹사업 운영권을 판매한다는 내용의 마스터 프랜차이즈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이미 중국 현지에 설빙과 유사한 상표를 달고 영업하는 ‘짝퉁 설빙’ 브랜드가 수 개나 됐다. 

이들은 국내에서 영업중인 설빙 매장의 인테리어, 종업원 유니폼, 진동벨, 메뉴, 간판 등을 그대로 카피했다. 중국 내에서는 ‘설림’ 등의 이름으로 한글 로고 역시 유사하게 만들어 장사를 했다. 

설빙은 뒤늦게 상표등록을 시도했지만, 중국 당국이 자국기업 상표 보호를 이유로 이를 무효화했다. 설빙이 오리지널 브랜드이지만, 중국 시장 내에서는 설림의 짝퉁이 된 셈이다. 설빙과 계약한 상해아빈식품은 짝퉁으로 몰려 중국 브랜드에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이에 상해아빈식품은 설빙의 허술한 관리 때문에 라이센스비 10억원을 주고 구매한 상표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며 설빙에 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열린 1심에서는 설빙이 중국 내 일부 유사상표에 대해 설명했으며, 나머지 다른 유사상표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명확하게 인식하기는 어려웠다고 봤다. 그러나 2심은 설빙이 계약 상대에게 중국 내에서 설빙과 관련해 이미 출원했거나 등록한 상표가 있을 수 있고, 이로 인해 설빙이 중국에서 상표등록을 하지 못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알려야하는 의무를 소홀히했다고 판단했다. 

물론 법원은 ‘설빙이 사전에 유사상표에 대해 인지했으며 이를 상해아빈식품 측에 알렸는가’ 만을 두고 판단하기에 이러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을 들여다보면 녹록치 않다. 

설빙과 같이 중국에서 선점당한 상표 수는 2014년 143건에서 지난해 723건으로 4년만에 5배 이상 크게 늘었다. 이러한 상표 선점을 전문적으로 하는 브로커 역시 과거 개인에서 조직단위로 커졌다. 현재까지 적발된 전체 피해현황 2962건 중 식품·프랜차이즈가 1021건을 차지할 정도로 대부분이다. 대기업과는 달리 중소규모가 많은 식품·프랜차이즈 기업은 상대적으로 법적 다툼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피해사례가 늘면서 지식재산권 분쟁과 관련해 정부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계속됐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현재 상표브로커로 인해 피해를 본 브랜드의 중국 출원 행정상태 현황을 보면, 법적 다툼을 통해 무효 처분을 받은 것은 11건, 등록 취소는 7건에 불과하다. 등록된 가짜 브랜드는 1200건에 이르며, 720건이 출원돼있다. 특허청과 한국지식재산보호원의 보호 프로그램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적극적인 액션을 취하고 있지 않다. 물론 북미정상회담이나 기타 외교적인 문제, 무역실리 등 산재해있는 대 중국 숙제가 많다. 그러나 상표권 박탈에 노출돼있는 국내 브랜드들은 생업을 빼앗기는 문제다. 소탐대실이 아닌 자국민을 보호하는 일이다.

중국몽(中國夢)에 취해있는 동안 이미 일부 부서나 기관의 대응으로는 국내 기업의 재산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정부차원의 조속한 대책을 통한 ‘우리’ 기업 보호가 필요하다. 

조현우 기자
akgn@kukinews.com
조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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