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4일 청와대를 찾았다. 3·1 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해외에 거주하며 독립유공자 가족으로서 어려움을 겪었을 후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마련된 오늘 자리.
구한말 13도 연합 의병부대를 이끌고 항일 무장투쟁을 벌이다 순국한 의병장 허위 선생의 증손녀 허춘화 씨(러시아 거주)를 비롯해 외국인임에도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힘쓴 분들의 후손들도 함께했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호주, 캐나다, 영국, 브라질에 거주하는 8개국 65명의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초청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선조들의 독립운동 공적과 발자국을 하나 하나 언급하며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은 외국인 독립유공자의 후손들에게 “여러분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대한민국의 마음을 기억해 달라”는 감사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지구 반대편 브라질에서 온 정영자 씨는 1919년 황해도에서 독립운동에 참가하고, 군자금 모금활동을 전개했던 한철수 지사의 후손(며느리)이다. 정영자 씨는 “시아버님이 독립운동으로 수감되어 고문을 당하시고, 사형선고로 수감 중 해방이 되어 극적으로 살아나셨다는 말씀을 들었다”며 “제가 시아버님 덕분에 이 자리에 참석하게 돼서 너무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경남 산청에서 독립운동을 주도하다 순국한 정문용 지사의 증손녀 김예서 씨(미국 거주)는 “공항에서 처음 한국 땅을 디딘 순간부터 유익하고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서대문형무소, 역사박물관과 독립기념관을 방문하면서 증조할아버지를 포함한 많은 분들의 나라를 위한 희생정신과 애국심을 크게 느낄 수 있었다”며 “지난 3·1절 기념식에서 대통령님과 함께 입장하고 애국가를 부를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무기 운반, 군자금 전달, 국내와 임시정부 간 연락 등을 통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한 영국인 쇼(George Lewis Shaw) 선생의 후손인 캐서린 베틴슨 씨(영국 거주)는 “1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쇼와 같이 불의에 대항하는 사람들을 도왔던 많은 애국자들을 기리고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사실”이라며 “한국이 얼마나 멋진 나라가 되었는지 보는 것은 매우 감동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대한매일신보, 코리아 데일리뉴스를 발행해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만행을 세계 각국에 알렸던 영국인 베델(Emest T. Bethell) 선생. 베델 선생은 “나는 죽을지라도 신보는 영생케 하여 한국 동포를 구하라”라는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았습니다. 베델 선생의 후손인 수잔 제인 블랙 씨(영국거주)는 이번 초청을 계기로 베델 선생의 유품을 국가보훈처에 기증했다.
쇼 선생의 후손인 케서린 베틴슨 씨와 베델 선생의 후손인 제인 블랙 씨는 현재 이웃 주민이고, 친구사이라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선대들의 아주 귀한 인연이 이렇게 후대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 참으로 놀랍습니다”라며 다시 한번 감사를 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아주 먼 여러 나라에서 이렇게 흩어져서 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독립운동가들의 후손이 겪어야 했던 여러 가지 고생들을 말해 주고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라며 부족한 점이 많지만, 우리 정부가 독립운동가들을 더 많이 발굴하고, 후손들을 제대로 모시기 위해 더욱 노력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오찬 메뉴로는 한국의 대표적인 봄 음식 쑥국이 올랐다. 문 대통령은 “지금 한참 한국에는 봄이 시작됐습니다”라며 한국에 머무는 동안 행복한 시간과 좋은 추억을 만들어 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번에 초청된 해외 거주 독립유공자 후손들은 지난 2월27일부터 6박7일의 일정으로 방한, 국립 서울현충원 참배를 시작으로 서대문형무소와 독립기념관 등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대한민국의 문화와 발전상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일정에 참여하고 있다.
이영수 기자 juny@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