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 치료 시술이 건강보험 급여화되면서 난임 여성들의 고충은 이전보다 가벼워졌을까.
이 질문의 답은 급여화 이후 난임 정책의 변천사를 통해 유추할 수 있을 터다. 2017년부터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의 일환으로 난임 치료 시술비가 건보 급여화됐다. 1년 6개월이 지난 현재 초기 논란이 됐던 난임 지원 연령 제한 등도 최근에는 상당부분 완화되는 등 상당한 정책 변화가 있었다. 올해 예산도 예년에 비해 3배 가까이 껑충 뛰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난임 정책의 히스토리는 흥미진진하지만, 난임 여성들의 시름은 아직 ‘현재진행형’으로 보인다.
◇ 급여화 이후… 논쟁의 시작
해가 지날수록 난임 여성들이 늘고 있다. 2007년도 17만8000명이었던 난임진단자는 2016년 기준 22만1000명으로 급증했다. 난임 시술의 건보 적용이 가시화된 것은 지난 2017년 사회보장위원회에서였다. 정부는 난임 치료 시술비의 건강보험 급여화를 심의·의결하고 그해 10월 정책 시행을 목표로 준비를 착착 진행해갔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사회적 돌봄체계를 확충한다”는 목표아래 저소득층의 난임시술비 지원을 위해 47억 원의 예산을 추가 편성한다. 그리고 디데이인 10월이 가까워오자 예상치 못한 상황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그해 9월15일 복지부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열고 만 44세 이하 난임 부부의 난임 치료 시술·체외수정·인공수정 등 보조생식술에 대한 건보 적용을 결정한다. 복지부는 각 시술기관별로 제각각의 가격과 시술체계로 운영 중인 난임 치료 시술 과정을 표준화하고, 이 중 필수적인 시술 과정 등에 10월부터 건강보험을 적용(본인부담율 30%)하기로 한다고 밝혔다. 과거 1회 시술당 300~500만원에 이르는 비용 부담을 경감하겠다고 정부는 호언장담했지만, 정작 난임 여성들은 정책 사각지대 발생을 우려했다.
비급여 당시 1회 무상 시술 등의 혜택이 사라졌고, 경제 형편이 어려운 난임 가정은 되레 급여화로 부담이 커졌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또 연령 제한은 차별적 대우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논란이 커지자, 시행을 사흘 앞둔 9월28일 복지부는 “다양한 사회적 요구들이 있었고, 이에 대해 시술의 의학적 안전성 및 유효성에 대한 전문가 자문, 제외국 사례 검토 및 전문평가위원회,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심의·의결 등 법령에 따른 사회적 논의 과정을 거쳐 관련 기준을 마련했다”는 설명자료를 발표한다.
그러나 쟁점이었던 지원 대상의 연령과 지원 횟수에 대한 정부 방향은 요지부동이었다. 복지부는 만 44세를 초과한 산모의 난임 시술에 대해 “나이가 많을수록 임신 확률 및 출생률이 급감하고 유산율이 증가하는 등 의학적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높다”며 연령 제한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또 체외수정 7회와 인공수정 3회는 해외 선진국 대비 “높은 수준”이라는 해명을 내놨다. 발표 이후 여론은 더욱 악화됐다. 난임 여성들은 정책 결정 과정에서 충분한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점을 들어 복지부의 소통 문제를 지적했다.
“난임 시술의 건보 적용을 불과 6일 앞둔 9월 26일 복지부는 갑작스럽게 28일 오전 간담회 일정을 잡고, 난임 당사자 참여를 5인으로 선정해 비공개를 논의를 진행한다고 통보했습니다. 여러 주요 언론이 문제제기를 하고 있던 것을 감안하면 당시 복지부가 얼마나 급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난임 여성 B씨)
난임 정책에 사각지대가 있다는 지적이 당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불거졌다. 당시 양승조 복지위원장,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간사, 남인순 의원을 비롯해 자유한국당 김상훈 의원도 복지부의 정책 개선을 촉구했다.
정책 시행 두 달 후인 12월 1일 복지부는 ‘약제 급여 목록 및 급여 상한금액표’ 고시 개정에 따라 난임 시술에 사용되는 세트로타이드주와 오가루트란주 등 조기배란억제제 2개 성분의 추가 건보 적용을 발표했다.
열흘 후인 12일에는 개선책이 발표됐다. 건강보험 적용 전 ‘난임부부 시술비 지원사업’에서 횟수를 소진해 건보 적용이 제한된 난임부부에 대해 보장횟수를 1~2회 추가 적용과 난자채취 과정에서 공난포가 나온 경우에는 횟수를 차감하지 않도록 한 게 그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연령 제한은 존재했다.
이후 올해 1월7일 복지부는 전년보다 137억 원 늘어난 184억 원을 난임 치료 시술비 정부지원 예산으로 확보한다. 지원 대상도 2인가구 기준 소득 180%(512만원) 이하에게까지 확대했다. 지원횟수도 신선배아 4회, 동결배아 3회, 인공수정 3회까지 건보와 연동된 횟수만큼 지원을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달 3일 복지부는 건정심에서 드디어 난임치료시술의 연령제한을 폐지한다. 건보 적용 횟수도 신선배아 7회, 동결배아 5회, 인공수정 5회로 크게 확대됐다. 5일 ‘모자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사실혼 부부도 난임 시술 지원을 받게 됐다.
◇ 고단함은 여전
“(난임 시술을) 한 회 한 회 살얼음 걷듯 임신을 시도하는 난임 여성들이 있습니다. 정부 정책은 아동수당, 보육비지원, 바우처 제도 등 상당수 지원이 현재 ‘엄마’가 된 가족들에게 집중되고 있습니다. 상당수 난임 여성들은 직장 상사의 눈치를 보며 휴가를 내고 난임병원으로 향하거나 화장실에서 ‘주사’를 놓는 ‘예비엄마’가 우리 주변에는 아직 너무 많습니다.”(난임 여성 A씨)
“건강검진에서 유방에 종양이 발견됐고, 유방암 1기 최종 판정 받았습니다. 항암치료 시 생식 기능이 떨어지고, 유방암환자는 최소 5년 이상 호르몬제를 복용해야 합니다. 암 진단은 곧 난임 진단과 다름없습니다. 암환자는 임신에 있어선 사각지대에 놓여있습니다. 복지부, 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사평가원 모두 난임 진단 없이는 보험혜택을 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난임 여성 B씨)
기자에게 제보 메일을 보낸 여러 난임 여성의 사연 중 일부다. 정책 당사자 각각의 상황을 충족시키는 정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한 정책이란 없다. 미출산 암환자가 사실상 난임진단자가 되는 상황이나 난임을 여성이 감당해야할 몫으로 치부되는 사회 분위기에서 정부 정책의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실상은 정책의 사각지대가 여전히 존재함을 반증한다. 본인을 24세의 어린 난임 환자라고 밝힌 여성은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자신의 절절한 사연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난임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갈 때, 정부에서 추가 지원금이라는 등불을 쥐어준다면 조금은 밝고 따뜻하게 터널을 지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시험관에 들어가는 자비의 절반만이라도 추가적으로 지원해주시면 저희 난임부부들의 부담을 크게 덜 수 있을 것입니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