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산불로 막대한 재산 피해를 입힌 강원도 산불 사태 와중에 화마로 집이 불타도 병원을 지킨 이들의 사연이 전해져 화제다.
속초의료원에서 일하는 원은주 보건의료노조 속초의료원지부장은 지난 4일 귀가길 라디오에서 산불 소식을 처음 접했다. 영동지역에서 종종 산불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고 있던 그는 주택 밀집지역이 아닌 산중에서 발생한 산불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게 된 것은 그가 탄 차가 대관령 고개를 넘을 때 강풍에 차가 크게 흔들리는 것을 보고 나서다. ‘보통일 아니다’라는 생각에 그는 곧장 속초의료원으로 향했다.
의료원은 전시 상황을 방불케 했다. 불은 이미 영랑호 인근 야산까지 옮겨 붙고 있었다. 뉴스를 접한 병원 대다수 직원들은 자발적으로 병원에 복귀해 있었다. 이후 비상소집이 개시되자 전 직원이 의료원으로 돌아와 불이 병원에 옮겨 붙을 최악의 사태를 대비했다.
환자와 보호자, 전 직원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중환자는 침대로, 일반 환자는 휠체어와 부축 등의 방법으로 후송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밤 10시경 대피명령이 떨어졌다. 입원환자 112명은 미리 협조 요청을 구한 인근병원으로 분산 후송됐다. 그러나 응급차는 턱없이 부족했다. 직원들은 자신의 차까지 동원해 환자 후송을 진행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화마는 의료원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병원 직원들은 속초소방서 소방관들과 함께 소화전을 펴 코앞까지 닥친 산불 확산을 막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연기와 분진 피해는 있었지만, 불이 의료원으로 옮겨 붙는 최악의 불상사는 막을 수 있었다.
원은주 지부장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영화 속에서만 보아오던 엄청난 상황을 직면했지만 환자와 보호자 후송 임무를 다하기 위해 의료원의 모든 직원이 혼신의 힘을 다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의료원이 불타는 불상사는 막았지만 피해는 컸다. 진화작업 도중 발목을 다친 직원도 있었고 3명의 직원은 집이 전소되는 피해를 입었다. 이들은 환자들을 지키기 위해 불, 연기와 싸웠고, 자신의 가족과 집은 돌보지 못했다.
직원 홍경애씨의 집은 하필 산불이 발화되었던 곳 근처에 있었다. 미처 손쓸 새도 없이 집은 화마에 휩쓸렸다. 전미숙씨도 병원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된 다음날 오후 집에 돌아갔지만, 이미 불타버리고 재만 남아 있었다.
하루아침에 살던 집이 불타 없어지고 가족들은 대피소에서 생활 중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대피소에 피신해 있는 이재민들의 건강을 돌보기 위해 의료봉사를 나서고 있다.
원 지부장은 “자신의 집이 불타는 상황에서도 의료원에 입원한 환자들의 안전을 생각해 묵묵히 자신들의 직무를 수행한 병원 직원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주길 부탁한다”고 밝혔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