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결혼식을 올린 30대 직장인 안모씨는 아내와 상의 끝에 ‘퀸 사이즈’ 침대를 포기했다. 대신 ‘슈퍼싱글 사이즈’ 침대 2개를 구입해 신혼집으로 들였다. 맞벌이로 서로의 출퇴근 시간이 다른 데다, 각자 잠꼬대도 무척 심했던 것. 안씨는 “서로의 숙면을 위해 따로 잘 수 있는 공간을 두는 게,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 같았다”라고 털어놨다.
이른바 ‘꿀잠’을 위해 과감히 지갑을 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최근에는 수면과 경제를 합친 ‘슬리포노믹스(sleeponomics)’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바쁜 일상 속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 등의 이유로 불면에 시달리는 이들이 계속 늘고 있는 탓이다.
실제로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의 관련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은 2016년 기준, 하루에 7시간 41분을 자는 것으로 나타났다, OECD 국가 중 꼴찌다. 평균 8시간 22분보다 무려 41분이 부족했다. 직장인의 수면 시간은 6시간 6분에 그쳤다. 학생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2017년 학생 건강검사’에 따르면 고교생 절반 정도는 하루 6시간도 자지 않았다.
잠자는 시간뿐 아니라, 수면의 질도 문제로 지적된다. 수면 장애로 진료를 받는 사람들은 매해 증가세다. 2010년 28만명에서 이듬해 30만명을 돌파했고 2015년엔 45만명으로 급증했다. 2018년은 상반기에만 40만35명으로 치솟았다. 수면제 처방도 2014년 126만4000건에서 2017년 159만8000건으로 증가하고 있다. 잠 못 드는 한국의 씁쓸한 단면이다.
이런 상황에 숙면을 돕는 침구류 등의 ‘꿀잠템’이 인기를 끌고 있다. 9일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2014년 3.0%에 불과했던 침대 매출 신장률은 지난해 14.7%까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프리미엄 가구를 주로 판매하는 백화점에서도 ‘꿀잠템’의 인기가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앞선 안씨 부부처럼 부부 침대를 싱글 사이즈로 구매하는 사례도 늘었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퀸 사이즈 대신 슈퍼 싱글을 부부가 각각 사용해 수면의 질을 높이려는 것”이라며 “필요에 따라 침대를 결합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된 제품도 나오고 있다”라고 말했다. 침대 2개를 사는 꼴이라 가격은 비싸지만, 고객들의 만족도는 더 높았다는 설명이다.
이에 관련 업체들도 첨단 기술과 신소재를 활용해 앞다퉈 ‘수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침구 브랜드 ‘템퍼’는 매트리스 상체 부분 각도를 1명씩 각자 조절할 수 있는 침대를 내놓기도 했다. ‘에이스침대’에서는 아예 슈퍼 싱글 사이즈 매트리스를 트윈형 프레임으로 세트 구성해 팔고 있다. ‘한국 시몬스’에서도 부부들을 위한 싱글 침대를 선보였다.
침대 외의 수면용품 판매량도 증가하고 있다. 전자상거래 업체 옥션에 따르면, 거위털베개와 기능성베개의 판매량은 2018년 기준 전년 대비, 110%, 149%씩 신장했다. 수면시 향기를 발생시키는 아로마램프‧오일과 디퓨저DIY는 60%, 107%. 적당한 소음으로 숙면에 도움을 주는 백색소음기 판매량은 무려 5678%나 급증했다.
유통 업체들은 이 밖에도 다양한 수면 관련 상품 비중을 늘리고 있다. 최근에는 통기성과 습도 조절에 용이한 말총 침구류도 각광받고 있다. 현재 업계에서는 식음료, 침구 등 국내 숙면용품 시장 규모를 약 2조원대로 추정하고 있다. 미국 20조원, 일본 6조원에 비하면 작은 규모지만, 충분한 성장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일과 삶을 구분하는 워라벨 문화가 자리를 잡으면서 수면에 대한 인식도 점차 바뀌어 나가고 있다"면서 "돈을 더 들여서라도 질 좋은 수면을 취하려는 사람들은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업계에서도 다양한 제품들을 선보이며 '숙면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한전진 기자 ist1076@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