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혼인제도에 편입하고 있지 않은 가족의 차별 해소, 다양한 가족 수용을 위한 제도개선을 위한 의견 수렴’. 사뭇 거창한 어젠다였다. 23일 오후 6시께 서울 홍대 인근 지하에 위치한 북카페. 한 시간 후 이곳에서는 여가부가 여러 형태의 가족과 만나는 다섯 번째 ‘릴레이 간담회’가 열릴 예정이었다. 앞선 문구는 여가부가 밝힌 행사 개최 취지였다.
정부 부처의 ‘소소한’ 간담회에 가보기로 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굳이 밝히자면 호기심에 가까웠을 터다. 기자는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이 비혼 남녀를 만나 처음으로 무슨 말을 건넬지가 궁금했다.
진 장관은 지난해 11월 싱글대디와의 만남에 이어, 같은 달 동거가족을, 올해 1월에는 미혼모, 2월에는 30~40대 1인 가족을 만났다. 간담회 테이블에는 진선미 장관, 김민아 가족정책과장을 비롯해 비혼 청년 8명이 마주앉기로 되어 있었다.
국무위원이 민생 현장을 찾아가는 것은 여러 의미를 갖는다. 대체로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지만, 릴레이 간담회 효과가 과연 여가부의 기대를 충족시켰는지는 의문이다. 특히 1인(남성)가족과의 만남이 그랬다. 당시 여가부는 예상치 못한 곤욕을 치러야 했다. 기자가 이 행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2호선 합정역 3번 출구를 나와 걷기를 5분여. 간담회 장소를 찾기란 어렵지 않았다. 카페 앞에 여러 대의 차량이 세워져 있었다. ‘느낌’이 왔다. 아니나 다를까 여가부 공무원들은 행사 준비에 분주했다. 그리고 7시가 되자 예정대로 장관이 왔다.
◇ 결혼하지 못하는 청년, 결혼하고 싶지 않은 청년
진 장관이 말했다. “가족의 형태가 굉장히 변화하고 있어서 가족정책 패러다임 변화나 정책 포용의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젊은 세대들에게 결혼이 어떤 의미일지를 듣고 놓치고 있는 것이나 도움 줄 부분이 무엇일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초저출산·초고령화 시대에서 결혼률이 낮아지고 있는 만큼 당사자들의 여러 말을 많이 듣고 정책에 참고하겠습니다.”
그러자 8명의 비혼 청년들도 자신의 이야기를 떠듬떠듬 꺼내놓기 시작했다. “지지기반이 있다면 누군가를 믿고 내 인생을 설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결혼 문제는 ‘주거’에요”, “육아와 결혼생활의 힘들어 보여서 암담해 보여요”, “중소·중견기업에 다니면 임금이 낮아 결혼을 엄두 내기 어려워요”, “부모님만큼 내 자녀에게 해줄 수 있을까요?” “결혼 비용 문제에 해결책이 없어서 혼자서 즐겁게 지내자고 생각해요”, “남성의 육아휴직에 부정적 시각을 가진 회사가 아직 많아요” 등. 누군가의 한마디가 인상적이었다. “가운데 껴 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이날 지각한 김규민씨는 “결혼이 선택의 영역이라는 사회적 흐름이 나쁘지 않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런 말이었다. 지금까지 유교적 사상 등의 영향으로 결혼을 해야 한다는 압박이 시대가 지나면서 점차 사라지고 있고, 개인의 마음(선택)으로 결혼을 선택하는 것은 바람직하다는 주장이었다. 그가 말을 이어갔다. “어렸을 때 외국에서 살았어요. 친구들이 부모님이 이혼했다는 말을 거리낌 없이 하더라고요. 그런 분위기가 부러웠어요. (정책이) 개인의 행복을 위하는 방향으로 가야할 것 같아요.”
이날 대화는 종종 삼천포로 빠졌다. 초반 어색해하던 청년들은 시간이 지나자, 본인의 이야기를 쉴 새 없이 쏟아냈다. 비혼이란 주제로 시작한 대화는 정치·사회·경제·문화 전반을 뜯어고쳐야만 한다는 방향으로 흐르는 것 같았다. 결론은 없었다. 더 정확하게는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주제임을 처음부터 알고 시작한 간담회였다.
사실 자발적이거나 비자발적인 이유에서든 청년들이 결혼을 하지 않는 현상은 우리사회의 여러 모순이 응집돼 표출된 하나의 시그널이라는 것을 이 공간에 모인 모두가 알고 있었다. 결국 진 장관은 한숨을 푹 쉬면서 “마음이 점점 무거워진다”며 ‘웃픈’ 속내를 내비쳤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