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철강업계가 철강재 가격 인상에 나섰다. 지난 1분기(1~3월) 원재료(철광석) 가격이 급등해 수익성이 악화된 탓이다. 다만 철강사들의 주요 수요처의 업황 부진이 이어지고 있어 가격 협상 타결까지 진통이 예상된다.
2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국내 주요 철강사들은 최근 원재료인 철광석 가격이 급등함에 따라 국내 전방산업(자동차·건설·조선업 등)에 판매하는 제품 가격 협상을 진행 중이다.
한국광물자원공사에 따르면 지난달 톤당 80달러대를 유지하던 철광석 가격은 이달 들어 톤당 93달러까지 급등했다. 이는 주요 광산업체인 브라질, 호주 등에서 천재지변으로 인해 공급 차질이 생긴 결과다.
먼저 지난 1월 브라질 대표 광산업체 발레(Vale)의 광산댐이 붕괴되면서 지난달 철광석 수출량이 2219만톤으로 지난 2월 대비 23%, 전년 동기 대비 26% 줄었다. 게다가 최근 호주 필바라(Pilbara) 지역 철광석 대형항구에서 사이클론이 발생했다. 그 결과 현지 광산업체 리오 틴토(Rio Tinto)는 생산 차질을 선언했다. 대표적 글로벌 광산에서 공급 차질이 발생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시장 상황을 반영해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은 주요 수요처와 가격 협상을 진행 중이다.
우선 현대제철은 현대기아차와 자동차 강판 협상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현대기아차는 악화된 실적을 이유로 현대제철에 자동차 강판의 가격 인하·동결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현기차는 지난 1월 컨퍼런스콜을 통해 “현대제철은 현대자동차그룹의 수직계열화 요소”라며 “자동차 산업의 지원을 위한 차원에서 강판 인상 계획은 따로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그러나 현대제철은 같은 날 컨퍼런스콜을 통해 “인상 요인은 충분히 있다”며 “시장 상황을 감안해 진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올해 초는 물론이며 최근 들어서까지 철광석 가격이 급등하면서 현대제철로서는 가격 인상이 요구되지만, 현기차 역시 최근 실적이 악화됨에 따라 양측의 입장이 워낙 팽팽한 상황이다. 결국 양사의 협상은 타결까지 지난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3위인 동국제강의 상황도 비슷하다. 동국제강을 비롯한 철강사들은 건설업계와 철근 등 철강재를 두고 가격 협상을 진행 중이다.
현재 철강사들은 건설업계와 ‘월별고시제’를 두고 갈등을 빚고 있다. 월별고시제는 시황을 반영해 매달 가격을 공지하는 방식이다. 건설업계는 이 방식이 정착된다면 건설사들의 가격 결정권이 박탈될 것이라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반면에 철강업계는 월별고시제는 물론이며 원가 부담을 제품 가격에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가격 인상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건설업계는 경기침체를 이유로 중국산을 비롯한 수입 철근을 확대하고, 월별고시제를 겨냥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는 등 양측의 대치는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철강사들과 조선업계의 선박 건조에 사용되는 후판(두께 6㎜ 이상 두꺼운 철판) 가격 협상은 일부 업체의 경우 마무리 수순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가격 등 세부적인 내용은 양 업계 모두 말을 아끼고 있다.
후판 협상은 앞서 지난해 11월부터 이달까지 지지부진하게 이어졌다. 조선업계는 이제 겨우 회복세에 접어든 탓에 선박 원가의 20%를 차지하는 철강업계가 후판 가격을 올릴 경우 생존이 위태롭다며 난색을 보였다.
그러나 철강업계는 조선업의 불황을 고려해 적자를 감내하고 후판을 판매해왔다며 팽팽한 갈등 구도를 이어왔지만, 최근 협상 타결을 앞두고 있어 관련 가격 협상에서는 철강업계가 한숨을 돌리게 됐다.
업계 관계자는 “철강재는 생산 과정이 단순해 마진 자체가 투명한 편”이라며 “그런데도 협상이 장기화하거나, 결렬되는 이유는 정상적인 가격 인상도 최근 부진을 면치 못하는 수요산업 입장에서는 부담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조금이라도 협상을 끌어 ‘인상 폭’을 줄이기 위한 의도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중권 기자 im918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