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녹지국제병원을 운영하는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이하 녹지)’가 병원 사업에서 손을 떼기로 하면서 직원들의 고용해지를 통보했다. 이런 가운데, 녹지 측이 향후 ‘투자자-국가 분쟁(ISD) 제도’를 통한 우리 정부와의 직접 소송을 ‘협상 카드’도 내걸 가능성도 점쳐진다.
녹지병원 직원은 초반 134명 중 현재는 50명만 남은 상태다. 녹지 측은 지난 26일 이들에게 고용해지를 통보했다. 시민단체는 영리병원 문제가 사실상 끝난 만큼 남은 고용유지 등을 위해 공공병원 전환 작업에 즉각 돌입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녹지 측은 직원들에게 ‘병원 근로자분들께 드리는 글’이란 통보문에서 “의료사업 추진 당시 온전한 개설허가를 전제로 제반 계획을 수립했으나 2018년 12월 5일 제주도청에서는 외국인전용이라는 조건부 개설허가를 했다”며 “그러한 조건으로는 도저히 병원개원을 행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주도청에 고용유지를 위해 완전한 개설허가를 해주던 지 완전한 개설허가가 어렵다면 제주도청에서 인수하거나 다른 방안을 찾아 근로자들의 고용불안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취지로 여러 차례 이의를 제기했지만 아무런 답을 얻지 못했고 4월 개설 허가마저도 취소됐다”고 회사가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4년 동안 병원 설립 및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 노력했다”며 “이제는 병원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밝히며 고용 해지 결정을 직원들에게 통보했다. 회사는 근로자대표와 추후 협의를 이어나가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러한 내용은 통보문을 받은 병원 직원에 의해 알려졌다.
이에 대해 원희룡 도지사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근로기준법상 한 달 전에 말해야 해서 (통보) 한 것으로 본다”며 “개원준비를 하지 않았고, 지난 3개월간 (준비가) 없었기에 예상된 수순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해 박민숙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은 “‘경영상의 이유에 의한 해고’ 절차를 밟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고 전했다. 박 위원장은 공공병원 전환이 고용승계를 위한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이들만큼 녹지병원을 잘 알고 있는 인력은 없다”며 “지역에서 의료인력 채용은 ‘하늘의 별따기’인만큼 공공병원 전환을 통해 고용승계 및 도민들에게 공공의료를 제공하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일 것”이라고 말했다. 박 부위원장은 “이러한 조치가 제주도 공론조사위원회의 권고사항을 존중하는 셈”이라며 “이를 위해 직원들에게 휴업 수당을 지불 및 고용승계에 대해 제주도와 복지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당부했다.
◇ 손배 갈까?
현재 녹지 측은 제주특별자치도의 조건부 개설허가 취소 행정소송을 벌이고 있다. 당초 소송 결과는 6월께 나올 것으로 전망됐지만, 이번에 녹지 측이 병원 사업 철수를 밝힌 만큼 재판 실익 등을 고려해 재판부가 각하 결정을 내릴 가능성도 농후하다.
다만, 녹지가 제주도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 가능성이 유력하다. 녹지 측은 지난달 26일 청문에서 “개원이 15개월 동안 지체해 인건비 및 관리비 76억 원 등 약 850억 원의 손실을 봤다”고 밝혔지만, 실제 손배가 진행될 시 배상 금액은 이를 훨씬 상회할 것으로 전망된다. 녹지 측은 청문에서 “조건부 허가 등은 한중 FTA에 따른 외국 투자자의 적법한 투자기대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밝혀 ‘투자자-국가 분쟁(ISD) 제도’를 통해 우리 정부를 상대로 직접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에 대해 녹지병원의 대리인인 법무법인 태평양은 “현재로선 정해진 것이 없다”이라며 말을 아꼈다. 행정소송 각하 가능성에 대해서도 태평양 관계자는 “그럴 가능성도 있을 것”이라며 “현재 상황을 녹지 측과 논의 중이며 아직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관련해 박민숙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은 “녹지는 ISD를 협상 카드로 소송을 제기한 후 제주도 및 정부와 협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