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허가 스탠트 유통 10년, 눈 뜬 장님 된 정부

비허가 스탠트 유통 10년, 눈 뜬 장님 된 정부

기사승인 2019-05-30 00:00:00

최근 국내 1위 대동맥 스텐트 제조·판매업체가 허가받지 않은 혈관 삽입용 의료기기를 만들어 유통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4년여 간 136개 의료기관에 약 4300여개 비허가 제품을 납품했다. 문제는 앞으로도 이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대책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의료기기의 허가와 유통, 관리·감독을 책임지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지난 24일 “향후 유사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인체이식 등 고위험 의료기기 점검을 강화하는 한편, 내부고발 등 공익신고를 활성화하고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불법 의료기기 제조행위를 강력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법을 개정해 처벌을 강화해 경각심 높이겠다는 것을 제외하면, 의료기기 위해감시체계를 더욱 강화하고 공익제보가 보다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전부다. 의료기기법 등에서 의료기기 안전관리체계 혹은 위해감시체계를 갖추고 제조시설 등을 수시 또는 상시 점검하고 부작용 등 이상사례 보고를 받는 지금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실제 식약처는 “제조·판매업체가 작정하고 이중장부를 만들어 허가된 모델명으로 납품하는 등 점검을 가도 확인이 어려웠다”면서 “특별감시나 관리체계 강화와 함께 공익신고에 대한 인식을 개선해 나갈 계획이다. 여기에 의료기기 유통경로나 부작용, 문제 발생했을 때 추적이 가능하도록 UDI(표준코드) 사업도 조만간 시행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업체나 의료기관이 작정하고 불법을 저지르지 않는 한 감시체계를 강화해 문제를 최소화하고, UDI 사업 시행으로 의료기기가 어떤 경로를 거쳐 병원에 납품됐는지 추적이 가능해져 특정 제품이나 품번에 문제가 제기됐을 때 의료기관으로 공문을 보내 추적관리 및 이상반응을 확인할 수 있어 보다 체계적이고 신속한 관리와 처리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식약처가 제시한 방안을 자세히 살펴보면 곳곳에 사각이 존재하는 듯하다. 당장 특별감시나 관리체계 강화를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방안이나 대책은 제시하지 않았다. 식약처에 물어도 뚜렷한 답을 내놓지는 않고 있다. 자율보고 형태의 안전관리체계도 의무화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더구나 전주기 추적관리가 가능하다는 UDI가 시행돼도 환자에게 어떤 의료기기가 언제 어디서 사용됐는지 등을 확인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한 의료기기업계 관계자는 “지금도 관리감독체계는 있지만, 인력이 부족하다며 서류로 대부분의 업무가 처리되고 현장실사 등 점검이 제대로 이뤄지는 경우는 드물다. 부작용 보고 등도 자율보고일 뿐”이라며 “여기서 체계를 강화한다는 것이 인력을 늘리겠다는 것인지, 새로운 규제를 만들어낼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은 없어 걱정이 앞선다”고 토로했다.

의료기기 제고관리 등을 상담하는 업체 관계자는 “UDI의 핵심은 의료기관이어야 하지만 정작 식약처 사업대상에는 의료기관이 빠져있다”면서 “결국 환자에게 어떤 제품이 언제 어떻게 쓰였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의료기관에서 제품의 제고관리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지금의 체계로는 앙꼬 없는 찐빵”이라고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심지어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비허가 스탠트 사건만 봐도 문제는 명확하다. 의사나 의료기관이 비허가 제품이라는 것을 몰랐다는 것도 문제지만, 정말 몰랐다면 의료기관에서 의료기기 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단적으로 반증하는 것”이라며 “이 같은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한 환자 안전은 담보되지 않는다”고 강한 어조로 비판하기도 했다.

그 때문인지, 식약처가 문제를 인지하고 제품회수를 명령한지 20여일이 지난 지금까지 시술받은 환자에 대한 정확한 현황과 피해상황은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이에 한국환자단체연합은 29일 성명을 통해 “비허가 혈관용 스텐트 사태의 최대 피해자는 환자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환자의 알권리 보호와 안전조치를 최우선적으로 시행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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