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쉬운 경제] 대한민국 자본시장 외국계 사모펀드 흥망사

[알기쉬운 경제] 대한민국 자본시장 외국계 사모펀드 흥망사

기사승인 2019-06-01 05:00:00

1992년 자본시장이 개방된 이후 국내 주식시장의 규모는 급격한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현재 시가총액은 약 1500조원으로 외환위기가 발생했던 1998년 초(1월 3일 기준) 72조원 대비 약 20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자본시장의 규모가 커진 만큼 외국계 투자자 혹은 사모펀드(PEF)의 비중도 조금씩 커진 상태입니다. 얼마 전에는 CJ그룹의 외식사업 계열사인 CJ푸드빌이 커피전문점 ‘투썸플레이스’ 경영권을 외국계 사모펀드에 매각했다는 소식도 들렸습니다. 

이러한 상황 탓인지 외국계 사모펀드에 대한 경각심이 커진 상태입니다. 얼마 전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는 현대차 그룹 지분을 보유한 뒤 지배구조 개편 및 배당 확대를 요구한 바 있죠. 또한 SK소버린의 경우 2000년 초 SK텔레콤 지분을 매입한 뒤 경영권을 흔들리기 했습니다. 덕분에 장하준 교수(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는 대기업 오너 기업의 지배력이 상실될 경우 외국계 투기자본의 놀이터가 될 것으로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외국계 사모펀드에 대한 영향은 사실상 고평가됐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해외 사모펀드가 국내 기업을 흔든 사례는 적은 편이고, 실제로 대기업 오너의 경영권을 먹어버린 경우는 없어서입니다. 

◆ 외환위기 후 국내 자본시장 빗장 풀려…조지소로스 핫머니 아시아 금융위기 초래 = 일반적으로 사모펀드는 투자신탁법상 100인 이하 투자자,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서는 50인 미만의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모집하는 펀드를 의미합니다. 투자자들도 일반투자자가 아닌 거액의 자본을 보유하고 있는 기관, 금융권이 주요 고객입니다. 공모펀드와 달리 비공개로 운용됩니다. 

외국계 사모펀드가 국내 자본시장에서 처음으로 영향력을 보인 시기는 바로 1997년 말 외환위기 사태입니다. 1997년 조지 소로스가 운용하는 ‘퀀텀펀드’를 필두로 수백 개의 핫머니들이 아시아 경제의 가장 약한 고리였던 태국 바트화를 대량 공매도하면서 흔들었습니다. 

태국 바트화가 위기에 봉착하자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한국, 홍콩까지 위기가 연쇄적으로 번지기 시작한거죠. 결국 위기에 처한 김영삼 정부는 환율 방어를 위해 외환보유고를 소진했고, 같은 해 12월18일에는 39억달러까지 급감합니다. 

결국 김영삼 정부는 외환을 갚기 위해 일본 정부에게 융자를 부탁하지만 거부당하면서 IMF(국제통화기금) 체제에 편입하게 됩니다. 이후 IMF의 요구로 97년에 외국계자본의 취득한도가 50%로 상향된 후 98년 5월 전면 개방됩니다.

◆ 외국계 사모펀드 급습, SK텔레콤 흔들다 =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가 국내 자본시장에 이슈가 된 사례는 소버린의 SK텔레콤 지분 매수 후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입니다. 물론 이전에 미국계 헤지펀드 타이거펀드가 SK텔레콤 지분(6.6%)를 매입한 뒤 경영권을 흔든 바 있습니다. 

소버린의 경우 적극적인 주주 행동주의로 막대한 시세차익을 남겼습니다. SK 지분 14.99%를 취득한 뒤 당시 최태원 회장의 경영권까지 흔들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전략으로 SK텔레콤의 주식가치는 급등했고, 이후 천문학적인 시세차익을 남긴 뒤 엑시트(매각)했습니다. 

이어 칼 아이칸은 헤지펀드와 연합해 KT&G 주식 6.59%를 매입하고 KT&G의 집중투표제를 이용해 부동산 매각, 회계장부 제출, 자회사(한국인삼공사) 정보공개 등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KT&G는 경영권 방어를 위해 2조8000억원을 투입했고, 주식가치가 오르자 칼 아이칸은 망설임 없이 지분을 매각했습니다. 칼 아이칸은 KT&G 경영권을 흔들면서 총 1482억원에 달하는 차익을 실현했습니다. 

론스타의 경우에도 외환은행을 헐값으로 사들인 뒤 차익을 얻었습니다. 론스타는 2003년 8월 외환은행 지분 51%를 1조3834억원에 사들여 최대주주가 된 후 2010년 하나금융지주에 지분 매매계약을 체결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 시 헐값에 팔았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이에 금융당국과 검찰의 전방적인 조사가 진행됐습니다. 이에 따라 애초 론스타가 매각하려는 시점(2006년) 보다 4년 이후에 엑시트가 가능해졌고, 론스타는 이를 빌미로 한국정부에 46억9000만달러(약 5조1000억원)에 달하는 ISD(투자자정부소송)를 제기했습니다.

◆ 외국계 사모펀드 등 투기자본 논란 견해 팽팽 = 국내에서는 외국계 사모펀드에 대한 불신이 깊습니다. 론스타 사례를 볼 수 있듯이 장기적인 경영 보다는 시세차익에 중점을 두는 경우가 왕왕 있어서입니다. 

게다가 일각에서는 국내 대기업 오너들의 지배력이 약화될 경우 투기자본의 ‘먹이감’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지난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합병을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수많은 언론들은 외국계 사모펀드의 투기성을 집중 부각했고, 자칫 삼성전자까지 흔들 수 있다는 여론을 조성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국내에서 별다른 수익을 얻지 못했습니다. 주주총회에 패한 뒤 주식매수청구권을 통해 일부 수익을 냈지만 소버린, 론스타와 비교한다면 큰 재미를 보지 못했습니다. 이후 엘리엇은 철지부심 끝에 현대차그룹 계열사 3곳의 지분을 매수했지만 실적 부진에 따른 주가 급락으로 사실상 물린 상태가 됩니다. 

오히려 5000억원에 가까운 손실을 낸 뒤 역설적으로 장기투자자로 돌아선 상태입니다.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비상식적인’ 배당 요구는 지배구조를 흔들기 위한 행위라기 보다는 여론조성을 통해 주가를 끌어올리려는 프로파간다(선전선동)에 지나지 않는다고 많은 전문가들은 얘기합니다. 다만 엘리엇이 삼성물산 합병과 관련해 한국정부에 ISD 소송을 제기한 것은 논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외국계 사모펀드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한국 기업들에게 공격적인 경영권 위협이 이뤄진 케이스는 일본이나 독일은 물론 어떤 선진국보다 훨씬 적다”고 지적했습니다. 

일본의 경우에는 세븐일레븐으로 잘 알려진 ‘세븐 & 아이 홀딩스’가 미국 사모펀드에 의해 CEO(최고경영자)가 교체된 사례는 있습니다. 이에반해 국내에서는 사모펀드의 개입으로 오너 일가의 경영권 교체가 이뤄진 경우는 단 한차례도 없었습니다.  

유수환 기자 shwan9@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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