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와 탁주에 부과되는 세금이 50년만에 출고가 기준에서 리터 기준으로 전환된다.
기존 맥주업체와 수제맥주 협회 등에서는 세 부담이 줄어 상품개발이 촉진될 것이라고 환영하는 반면, 탁주업계에서는 단순 과세체계 전환만으로는 시장을 살릴 수 없다는 입장이다.
◇ 50년만에 과세체계 전환
5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세제 개편 관련 당정협의에 참석해 “맥주와 탁주 두 주종에 대해 우선적으로 종량세로 전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출고가 기준으로 과세하는 기존 종가세에서 알코올 도수·중량 기준으로 과세하는 종량세로 전환할 경우, 서민의 술인 소주 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됐다. 각 업계의 의견을 수렴해 우선 논란이 될 수 있는 소주는 두고 맥주와 탁주 2개 주종만을 선별해 적용토록 한 것이다.
홍 부총리는 “정부는 당초 소주와 맥주를 비롯해 전 주종을 대상으로 종량세 전환을 검토했으나 50여년 간 종가세 체계 하에서 형성돼 온 현재의 주류 시장·산업 구조에 급격한 변화가 초래될 수 있다는 주류 업계 의견을 최대한 존중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개편안에 따라 맥주는 리터 당 830.3원의 세율이, 막걸리를 포함한 탁주에는 ℓ당 41.7원의 세율이 각각 적용된다. 이는 수입맥주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간 출고가가 낮은 탓에 오히려 과세가 오르게 되는 생맥주에 대해서는 2년 간 세율을 20% 경감하기로 결정했다.
정부는 맥주와 막걸리에 붙는 종량세율을 매년 물가에 연동해 조정하기로 했다. 통계청의 소비자물가지수를 기준으로 물가상승률을 설정하며, 물가연동제 최초 적용 시기는 2021년이 된다.
홍 부총리는 “종량세 전환이 이뤄지는 주종과 종가세가 유지되는 주종(증류주 등)의 세 부담 형평성을 감안해 물가 상승분을 매년 종량세율에 반영함으로써 물가 상승에 따른 실질 세 부담이 유지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 환영하는 맥주, 쓴 웃음 짓는 탁주
주세법 일부 개정에 대해 맥주업계는 환영하는 분위기다. 특히 그동안 업계 고사(枯死) 위기를 주장했던 수제맥주협회는 “증세 없는 세제 개편, 맥주 시장 선진화 도래”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수제맥주협회는 이날 입장자료를 통해 “종량세 전환으로 진정한 품질 경쟁이 가능해졌으며 국내 맥주 시장 전체가 함께 성장하는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기존 종가세 산하에서는 설비투자나 고급 재료 비용이 모두 세금에 연동되어 고품질 맥주를 개발하기 어려운 구조였으나 종량세로 전환되면 이러한 점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소비자들이 우려했던 수입맥주 ‘4캔 1만원’ 역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 코리아 이오륜 선임연구원은 “주세 개편으로 국산 맥주에 붙는 세금은 소폭 하락하고 수입맥주에 붙는 세금은 (현재보다)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실질적으로 소비자가 구매하는 가격에는 영향이 크게 미치지는 않아 소비자들의 대규모 이동은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내 주요 맥주 업체들 역시 최근 수입 맥주의 포트폴리오를 늘리고 있는 상황임을 고려할 때 다채로운 맛을 찾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수입맥주는 계속해서 강세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반면 함께 종량세 전환에 포함된 탁주업계에서는 마냥 기뻐하지는 않는 모습이다. 출고가 대비 72%의 세금이 부과돼 수입제품과 형평성 논란이 있었던 맥주와는 달리, 탁주는 5%의 세금이 부과돼 상대적으로 부담은 적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탁주업계에서는 과세보다도, 주세법 개정을 통해 ‘탁주’의 가용 범위를 넓혀달라는 주장을 계속해왔다. 현재 제품 제조시 원 재료를 막걸리를 사용했다 하더라도 향이나 색소를 첨가할 경우 주세법상 기타주류로 분리돼 막걸리라는 명칭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세금 역시 탁주 5%보다 높은 기타주류 30%가 적용된다.
탁주가 아닌 기타주류로 구분되면 유통경로도 달라진다. 탁주와 약주, 청주 등은 특정주류도매업자가 판매하며 기타주류는 종합주류도매상이 취급하게 된다. 탁주는 특성상 ‘콜드체인’ 유통이 필수적인 만큼, 추가적인 비용이 더 들어가게 된다. 2016년 당시 바나나·밤 등 다양한 막걸리가 인기를 끌며 판매량이 급증했지만 정작 큰 재미는 보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탁주업계 관계자는 “수년간 제자리걸음이었던 주세법 개정이 점진적으로나마 이뤄진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라면서 “맥주와 탁주를 시작으로 충분한 고민을 통해 다른 주종으로 확대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탁주에 있어서는 과세보다 더 급한 사안이 있었던 만큼 이 부분이 해결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면서 “아직 개정안 적용까지 시간이 있는 만큼 정부부처에서 더 들여다봐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현우 기자 akgn@kukinews.com